2012년 3월 12일 월요일

상례

상 례 (喪 禮)

상례란 사람이 운명하여 땅에 묻힌 다음, 소상, 대상을 지내고 담제, 길제를 지냄으로써 탈상하게 되는 3년 동안의 모든 의식을 말한다.
사람은 한번 세상에 태어나면 반듯이 죽게 마련이다. 부귀영화를 누렸거나 유리걸식을 했거나 비명횡사를 했거나 간에 사람이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관문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일생 동안 함께 살아오던 가족, 친지 등 모든 반려자와 영원히 이별해야 된다는 것은 애초부터 정해진 신의 섭리인지라 인간으로서는 엄숙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일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관혼상제 의례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정중하여 그 절차가 까다롭고 그 이론이 구구해 사례편람(四禮便覽)도 아홉 권 중에서 다섯 권이 바로 상례인 것이다.

원래 상(喪)이란 ‘운다는 뜻의 哭’과 ‘잃다는 뜻의 亡’이 합한 말로 ‘잃어버린 것을 애타게 여겨 운다’의 뜻으로, 더 나아가 ‘사람의 죽음은 슬피 울 일이어서 죽었다는 뜻’을 나타낸다. 특히 자녀가 그의 부모의 사망을 말할 때 喪이라고 한다. 차마 자식으로서 사(死)라고 쓰지 못하고 상(喪)이라고 쓰는 것이 자식의 마음인 것이다.

논어에 禮(예)는 與其奢也寧儉(여기사야영검)이고, 喪(상)은 與其易也寧戚(여기이야영척)이라고 했고(예의는 사치스럽고 자랑하기보다는 편안하고 검소함에 있고, 상례는 의식 따위를 갖추는 것 보다 오히려 마음의 애통을 더 중하게 여긴다), 후한서에는 喪은 貴致哀요(상귀치애), 禮는 在寧儉(예재영검)이라 했듯이(상례는 지극한 슬픔에 있고 예는 편안하고 검소함에 있다) 예를 다하여 장사를 치르되 결코 형편에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해 반듯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 이재 선생의 사례편람을 중심으로 해서 그 규범을 정하니 참고하도록 할 것이다.

전통 상례 (傳統喪禮)
참고로 전통 상례 절차에 대해서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임종 -- 수시 -- 고복 -- 발상 -- 전 -- 습 -- 소렴 -- 대렴 - 성복- - 치장 - - 천구 - - 발인 - - 운구 - - 하관 - - 성분 - - 반곡 - 초우 - -재우 -- 삼우 -- 졸곡 -- 부제 -- 소상 -- 대상 -- 담제 - 길제

현대식 상례
임종 -- 수시 -- 발상 -- 부고 -- 염습 -- 입관 -- 성복 -- 발인 - 운구-- 하관 -- 성분 -- 위령제 -- 삼우 -- 탈상

1) 임 종 (臨終)
가족이나 가까운 혈족이 운명할 때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말하는데, 머리가 동쪽(사례편람등 어느 책에도 왜 이러한 방향을 택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만 역학적인 의미에서는 이해가 된다)으로 가게 눕힌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평소에 입던 옷 중에서 흰색이나 엷은 색의 깨끗한 옷을 골라 입히고 거처하던 방과 운명한 뒤 모실 방도 깨끗하게 치워 둔다. 유언이 있으면 침착한 마음으로 기록하거나 녹음해 두고, 임종하기 전에 보고 싶어하는 친족 친지에게 속히 연락하여 운명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숨을 거두면 사망 진단서를 받아 놓는다.

옛날에는 큰소리를 내어 우는 곡을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현대의 주거 생활을 고려하면 일부러 소리내어 곡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나오는 울음을 억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가까운 근친들이 오는 대로 죽은이를 보이고 슬픔을 더하게 하는 것은 좋으나 평소에 죽은이를 자주 보지 않던 이성(異性)은 구태여 볼 필요가 없다.

죽은이의 방은 비우지 않도록 할 것이며, 고복(皐復)이라 해서 죽은이의 육신을 떠난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죽은이의 직계 자손이 아닌 사람이 죽은이의 속적삼 등의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깃을 오른손으로는 허리춤을 잡고 북쪽을 향해(또는 마당에 나가 마루를 향하여) 흔들며 “고 학생모(김씨면 김, 장씨면 장)공 복! 복! 복!” 하거나 그냥 세 번 복! 복! 복! 하고 길게 고하고 지붕에 옷을 던져 놓았다가 (이 것은 喪家임을 알리는 표시도 된다) 나중에 내려서 시신 가슴 위에 얹어 놓게 되는데, 원래는 이 皐復이 끝난 뒤에야 곡을 하는 것이다. 이 옷은 나중에 영좌를 설치할 때 흰 종이로 싸서 혼백과 함께 상자에 넣어 밤이면 덮어서 뉘어 놓고 낮이면 열어서 세워 놓았다가 후일 유의로 쓰게 되는데, 이 고복은 주술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 수 시 (收屍)
시체의 머리와 손발을 바로 잡는 일을 말하는데 죽은지 약 1시간이 지난 후가 좋다.시신의 머리가 남쪽으로 가게 방의 한쪽에 반듯하게 눕힌다. 먼저 눈을 곱게 감도록 쓸어 내리고 몸을 반듯하게 한 다음 손과 발을 가지런히 하는데 시체가 굳기 전에 해야 한다. 머리를 약간 높게 하여 괴고(그래야 입이 다물어 진다), 속광(마지막 숨을 거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햇솜을 입 위에 놓음으로써 숨이 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쓰였던 깨끗한 솜으로 코와 귀를 막는다. 백포로 시체의 얼굴을 덮으며 백지나 베로 좌 우 어깨를 단단히 동여맨 후 양팔 양손을 곱게 편다.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되 남자는 오른손을 위로, 여자는 왼손을 위로 즉 흉사시의 공수를 한다. 두 다리도 곱게 편 후 두 발을 똑바로 모아 백지나 베로 동여매 어그러지지 않게 한 후 홑이불로 머리끝까지 덮은 뒤 병풍이나 장막으로 가린다. 그 앞에 향상을 차리고 향을 피우며 두 개의 촛대를 좌우에 세우고 촛불을 켠다. 요즈음은 모든 절차를 장의사에 의뢰하는데 최소한 이 수시 만은 자손이 직접 해야 할 것이다. 이 수시를 소홀히 하면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거나 입이 벌어지게 되거나 몸이 뒤틀리게 되니 세심하게 주의하여야 한다.

3) 상주(喪主)·주부(主婦)·호상(護喪)·사서(司書)·사화(司貨)를 정한다.
•상주(喪主) : 장자나 장손이 맡는다. 불연이면 친족 중에서 연장자가, 친족도 없으면 친척 중 가장 가까운 이가 주상이 된다. 그러나 처가 쪽 친족은 主喪이 될 수 없다. 아들이 죽었을 때는 부친이,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남편의 죽음에는 큰아들이 주상이 된다.
•주부(主婦) : 주부란 죽은 사람의 처를 말함인데, 그 처가 없으면 상주의 처로 대신 한다. 남편의 죽음에는 큰아들이 주상, 미망인이 주부이나 삼우가 지나면 큰며느리가 주부가 된다.
•호상(護喪) : 친척 중에서 예절을 잘 알아 능히 간섭할 만한 사람으로 하여금 상사를 맡아보게 한다.
•사서(司書)·사화(司貨) : 상복을 입지 않는 친척 혹은 친우 중에서 정한다. 공책 두 권을 준비해 한 권에는 쓸 물건 또는 재물의 출납을 기록하고 또 한 권에는 친한 손님의 부수를 기록한다(요즈음은 부의록으로 대신한다). 간혹 상주가 현금과 재물의 출납을 직접 관리하는 것을 보는데 민망한 일이다. 애초에 정해진 상주 한 사람의 통솔하에 영수증 처리를 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조문객의 출입을 적은 공책은 父喪에는 조객록(弔客錄)이라 쓰고, 母喪에는 조위록(弔慰錄)이라 쓴다. 부수를 기록하는 책은 부의록(賻儀錄)이라 쓰는데 백지에 붓글씨로 쓴다. 축문도 미리 준비해 둔다. (축철 : 상장례를 치르는 사이에 읽어야 하는 모든 축문을 써서 책으로 맨 것).

승중상(承重喪) : 손자가 상주가 된 경우를 말한다.

조상(弔喪) :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죽은 이가 남자이면 손님이 영좌 앞에서 죽은 이에게 슬픔을 나타내기 때문에 남자가 죽은 喪에 인사하는 것을 조상이라고 한다. 조객록에 기록한다.

문상(問喪) : 근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묻는다는 뜻이다. 죽은 이가 여자이면 손님이 죽은 이에게는 인사하지 않고 주상 주부 이하 복인에게만 죽음을 위문하기 때문에 여자가 죽은 喪에 인사하는 것을 문상이라고 한다. 조위록에 기록한다.

조선일보사 발행 ‘우리말의 예절’에는「상가에 가서 죽은 이 즉 주검에게 예를 올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을 보통 “問喪”이라 하고, ‘조문(弔問)’ ‘조상(弔喪)’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말들을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 그러나 원래는 다르게 쓰던 말이다. 즉 “弔喪”은 죽은 이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고, “弔問”은 상주에게 인사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 “弔喪”이나 “弔問”은 부모상 또는 承重喪, 남편 상에만 쓸 수 있는 말이었고, 아내 형제 자녀 상, 그리고 승중상이 아닌 조부모 상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하는 것은 “弔慰” 또는 “慰問”으로 달리 지칭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문상(問喪)이라는 말로 이 모든 경우를 대신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사전에는 조상 즉 문상은 남의 상사에 대하여 슬픈 뜻을 나타 냄 또는 그 인사를 말하고, 조문은 상주된 사람을 위문(위로하려고 문안하는 것)하는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어찌되었든 현실은 죽은 이가 여자이더라도 손님이 영좌 앞에서 절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따라서 여자가 죽은 상에서는 분위기를 보아 가며 분향 또는 헌화하고 바로 상주에게 인사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4) 발 상 (發喪)
초상을 알리고 상례를 시작하는 절차이다. 수시가 끝나면 가족은 곧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근신(易服·素食이라 해서 주상 주부 이하 근친들은 화장을 지우고 액세서리를 떼며 양말이나 버선을 신지 않고 방석을 깔지 않으며 면도를 하지 않는다)하며 애도하되, 호곡은 삼가한다. 흔히 “謹弔”라고 쓰인 등을 달아 놓거나 “喪中”또는 “忌中”이라 쓰인 네모난 종이를 대문에 붙여 초상을 알린다.

①근친과 호상이 상의해서 장례 절차를 정한다.
②매장 화장 여부, 수의와 관, 장지, 교통편, 노제 여부, 부고 방법, 상복 상장, 화장을 한다면 골분을 소산할 것인가 납골할 것인가 등 제반 사항을 결정한다.
③수의와 상복을 짓고 관을 준비한다.
④영좌를 마련하고 상차를 설치한다. 영좌(靈座)는 손님이 죽은 이에게 슬픔을 나타내는 장소이고 상차(喪次)는 주상 이하 상제들이 있는 장소이다. 집이 좁으면 시신이 있는 방에 차리고 집이 넓으면 시신의 방에 가까운 곳에 차린다. 가능하면 남자조객과 여자조객을 받는 곳을 따로 차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좌와 상차를 남녀별로 따로 차리게 된다면 주상과 상제는 조상석에서 영정을 바라볼 때 오른쪽에, 주부와 안상제는 조상석의 왼쪽에 자리하여 조문객을 맞이하여야 한다. 만일 한곳에 차리게 된다면 주상과 상제는 오른쪽에, 주부와 안상제는 왼쪽에 차려야하나 현실은 여자들이 음식물 준비 관계로 자리를 비우게 됨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문상객의 자리는 고운 자리를 깔되 주상 이하 상제의 자리는 거친 자리여야 한다.

모든 의식행사에서 말하는 동서남북은 나침판상의 동서남북과는 관계가 없다. 단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나 윗 사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을 제일 윗자리라하고 이 방향을 북쪽이라고 정하게 된다. 따라서 그 앞이 남쪽이며 왼쪽이 동쪽, 오른쪽이 서쪽이다. 영정이 있는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를 기준으로 해서 설명하면 男東女西 또는 男左女右라 해서 주상과 상제는 동쪽 즉 왼쪽, 주부와 안상제의 자리는 서쪽 즉 오른쪽이다. 이 원칙은 혼례나 현구고례, 수연 등의 하례, 제례 등 모든 의식 절차에서도 동일하다. 덕수궁이나 창덕궁에 있는 품계석도 文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임금이 신하들을 볼때 왼쪽 즉 동쪽이 문관 서쪽이 무관이다. 다만 죽은 이는 이와 반대여서 지방이나 신주, 묘지의 시신은 남자가 서쪽, 여자가 동쪽이다. 젯상을 차릴 때 밥이 서쪽 ,국이 동쪽에 놓이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⑤상가배비(喪家配備)라고 해서 상가임을 알리는 표시를 하고 밤샘에 지장이 없게끔 조명 시설을 한다던가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간단한 다과 대접을 위한 준비를 한다든가 일하는 사람의 음식 조달 등의 제반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⑥아침과 저녁에 시신의 오른쪽 어깨 옆에 상을 차려 올리는 것을 설전(設奠)이라고 하는데 밥이나 국 등 상할 염려가 있는 음식은 차렸다가 잠시 후에 치우지만 과실, 술, 포 등은 다음 전까지 두었다가 새로 전을 올릴 때 먼저 것을 치운다.
사례편람에는 초종에서 성복하기 전까지 하루에 한 번만 주과포해로 전을 올리는데 상주는 애통함을 금할수 없어 친히 올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며 손을 씻고 잔에 술을 부어 시신의 동쪽 어깨에 닿을 만큼 놓는다. 이어 소렴, 대렴 때도 전에 것을 치우고 새로 올린다. 이어 입관이 끝나면 즉 성복하게 되면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전을 올리고 밥을 먹을 때는 상식이라고 해서 술만 치우고 상식에 반찬과 숟가락과 접시를 진설하고 술을 부은 후 밥뚜껑을 열어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로 놓는다. 잠시후 국그릇을 치우고 숭늉을 내온 후 조금 있다가 물린다라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소렴, 대렴 및 입관을 같은 날 하게 됨으로 설전을 처음부터 아침과 저녁에 하루에 두 번 올리게 되는 것이다.
또 사례편람에 우제 전에는 술과 과일만 진설된 그림이 있고 반과 갱의 진설은 없는데, 다만 생시와 같이 섬긴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식을 올릴 때는 생시에 쓰던 그릇으로, 밥과 국그릇의 위치는 살아 생전과 같이 놓아야할 것이다. 따라서 우제를 올릴 때 비로서 밥과 국그릇의 위치가 사자이서위상에 따라 바뀌어야할 것이다. 또 간혹 성복하기 이전에 전을 올리고 나서 절을 하는 것을 보는데 예의에 벗어난 짓이다. 고례에 성복 이전에는 조례나 배례가 없다.
⑦상가의 대문 앞에 사자밥이라고 해서 저승 사자를 대접하기 위해 상을 놓고 밥,나물, 짚신, 돈 등을 차리는 풍습이 있는데 합리적이 아니니 하지 말자.

5) 부 고 (訃告)친족과 친지에게 고인의 사망을 알리기 위하여 호상과 사서는 부고를 써서 발송한다.

☞1.부고는 호상이 보내는 것이라 돌아가신 사람이 상주의 아버지이면 大人, 어머니면 大夫人, 할아버지이면 王大人, 할머니이면 王大夫人, 처는 內室 또는 閤夫人, 큰형이면 伯氏, 둘째형이면 仲氏, 동생이면 季氏라고 쓴다.
☞2.나이 들어 돌아가셨으면 노환(老患), 병으로 돌아가셨으면 숙환(宿患), 뜻밖의 사고로 돌아가셨으면 事故急死라고 쓴다.
☞3.부고를 우편으로 보낼 경우는 玆以, 사람이 직접 전할 때는 專人이라 쓴다.
☞4.부고는 호상과 사서가 협의하여 친족과 친지에게 보내는데, 호상과 사서가 없이 상주가 직접 부고를 하는 경우에는 친척에게만 하고 친지에게는 보내지 않는다.
☞5.어머니 상일 경우에는 상주의 성과 이름을 쓰고, 망인의 성 뒤에 公 대신 氏나 女史를 쓴다.(예 : 張柱弘大夫人杞溪兪氏以···) 마찬가지로 죽은이가 여자이면 公대신 氏나 女史를 쓴다.
☞6.사자(嗣子)는 큰아들, 사부(嗣婦)는 큰며느리, 승중(承重)은 큰손자가 주상인 경우를 말한다.
☞7.당연히 주상과 주부를 먼저 써야 한다. 즉 미망인은 주부이고 주상은 嗣子이므로 사자 미망인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부 손녀 손서의 순서가 원칙일 것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8.주상의 자기 지칭
고자(孤子) : 어머니는 살아 계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들
애자(哀子) : 아버지는 살아 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들
고애자(孤哀子) : 부모가 다 돌아가셨을 때의 아들
고손(孤孫) :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고 할머니는 살아 계시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주상인 손자.
고애손(孤哀孫) :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셨을 때의 주상인 손자
☞9. 한글 서식

☞10. 한문 서식

※위의 양식에서 최근에는 사례편람에서 처럼 “玆以訃告”라고 하지 않고 “玆以告訃”라고 쓴 경우를 종종 본다.
☞11.사망 통지 친족 범위(본인이 사망했을 경우를 기준으로 함)
친가 쪽으로는 근친에게 모두 알려야 하는데, 여기서 근친이라 함은 고조할아버지를 같이하는 8 촌 이내의 모든 사람을 말한다. 옛날에는 이 근친을 한 집에서 산다는 의미로 당내간(堂內間)이라고 하고, 죽으면 상복을 입어야 되는 친척이라는 뜻으로 유복지친(有服之親)이라고도 한다.
외가와 처가 쪽으로는 아래그림의 처가에 해당하는 친족에게는 알려야 할 것이다.(○ 내는 촌수를 말한다.)

6) 염 습 (殮襲) : 목욕 습 반함 소렴과 대렴을 거쳐 입관하게 되는데

⋄목 욕(沐浴)
죽은 이가 남자이면 남자 근친이 목욕시키고, 여자이면 여자 근친이 목욕시키는 것이 원칙이나 이하 모든 과정을 장의사와 상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습(襲)
죽은이에게 수의를 입히는 절차이다.
⋄반 함(飯含)
반함이란 죽은 이의 입에 밥을 물리는 것을 말하는데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쌀을 퍼서 오른편 입에 넣고, 구슬이나 동전을 넣는다. 이어서 왼쪽에 넣고 끝으로 가운데에 넣는다. 들은 이야기로는 저승에 가는 노자라고 한다.
⋄소 렴(小殮)
소렴이란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한다. 죽은 그 다음날 아침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소렴에 쓸 옷과 이불을 준비해 놓는다. 머리를 묶을 삼끈과 베끈을 준비하고 소렴 상을 마련하고 시신을 묶을 베와 이불과 옷도 준비한다. 이것이 끝나면 제물을 올린 다음에 소렴을 시작한다.

우선 시신을 소렴 상에 눕히고 옷을 입히는데, 옷은 좋은 것을 골라서 입히고 이불은 겹으로 한다. 옷을 입힐 때는 왼편으로부터 여미되 고름은 매지 않으며, 손은 악수로 싸매고 멱목으로 눈을 가리고 폭건과 두건을 씌운다. 이불로 고르게 싼 다음 長布(장포), 속포(束布) 순서로 묶는다.

자세히 설명하면 먼저 1-7 번까지의 가로매(가로로 묶을 베)를 잇대어 깔고, 그 위에 세로매(세로로 묶을 베), 또 그 위에 작은 이불을 펴면 그림과 같은 모양이 된다. 각 가로매와 세로매는 양끝을 모두 3가닥으로 찢어 놓아 묶을 때 이용하도록 한다. 시신을 옮겨 놓고 먼저 발쪽을 여미어 이불 끝이 배위에 오도록 하고, 다음 머리 쪽을 여며 배 위에서 맞닿게 한다. 다음 왼쪽, 그 다음 오른쪽을 여며 시신을 감싼다. 다음 세로로 묶는 끈(長布)을 배 위에서 모아 왼쪽(1번)끈을 먼저 묶고, 그 다음 오른쪽(3번), 맨 나중에 가운데(2번)끈을 묶는다.
가로로 묶는 끈(束布)은 머리 쪽에서부터 시작하는데 1번 폭의 1번 2번 가닥은 묶지 않고 왼쪽부터 여며 머리를 보기 좋게 감싸도록 하고, 3번 가닥은 매듭이 한가운데 오게끔 홀쳐맨다. 이하 2-7번 폭의 각 가닥을 일직선이 되게끔 묶으면 결국은 19 개의 마디가 일직선으로 생긴다.

⋄대 렴(大殮)
대렴이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의식으로 소렴을 한 이튿날, 즉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에 하는 것이 원칙이나 요즈음은 삼일장을 하게 되므로 소렴 대렴을 같은 날 한다.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탁자를 가져다가 방 동쪽에 놓고 큰 이불을 준비한다. 시신을 맬 베는 세로는 한 폭의 양끝을 세 가닥으로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하고 가로는 다섯 폭을 쓴다.
다음으로 관을 들여다가 방 서쪽에 놓고 입관하는데, 이때 제물을 올리는 것은 소렴 때와 같이한다. 이때 자손과 부녀들은 손을 씻는다. 대렴금으로 시신을 싸되 먼저 발을 가린 다음 머리를 가리고 또 왼쪽을 가린 뒤에 오른쪽을 가린다. 장포와 횡포 순으로 맨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속에 넣는다. 생시에 빠진 이나 먼저 깎은 손톱 발톱을 담은 주머니를 관 귀퉁이에 넣는다.
가로매 5폭을 그림과 같이 펴고, 그 위에 세로매 1폭을 놓고, 또 그 위에 큰 이불을 놓으면 그림과 같이 된다. 소렴 때와 같이하면 가로매는 15가닥이 된다.
먼저 큰 이불을 아래, 위, 왼쪽, 오른쪽 순으로 여미어 시신을 감싸고, 세로매를 1, 3, 2번 가닥 순으로 묶는다. 다음 가로매는 1번 폭의 1, 2번 가닥은 소렴 때와 마찬 가지로 묶지 않고 조심스럽게 감싸서 여미기만 하고, 세 번째 가닥부터 묶는다. 대렴때는 13매듭이 생기게 된다.


⋄입 관(入棺)
주검을 관에 넣어 방의 동쪽에 머리가 북쪽을 향하게 관을 안치하고, 관 앞에 병풍을 둘러친 다음 발치 쪽에 명정을 세운다. 이것이 끝나면 영좌를 다시 설치하는데 사진에 검은 리본을 맨다. 혼백 상자를 영좌의 사진 앞에 모시고 뚜껑을 열어 놓는다. 관 동쪽에 영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올린다. 최근엔 영상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영 상(靈牀) : 영상 위에 고인이 사용하던 침구, 의복, 지팡이, 신, 수건, 붓, 벼루 등을 올려놓는다.

7) 성 복 (成服)
대렴이 끝난 이튿날, 죽은지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의식이나 요즈음은 입관하면 즉시성복을 한다. 맨발이었던 발에도 버선이나 양말을 신는다. 날이 밝으면 오복(五服)을 입을 사람들이 각각 그 복을 입고 제자리에 나간 후에 아침의 곡을 하고 서로 조상(弔喪)한다. 성복 이전에는 입곡(立哭)만하고 조례(弔禮)와 배례(拜禮)는 하지 않는 법이다.

☞오 복(五服) : 다섯 등급의 상복을 말하는데
∙참최(斬衰) : 3년. 거친 삼베로 짓고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상복 외간상(부친상에 입는다)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재최(齋衰) : 1년. 거친 삼베로 짓고 아랫단을 한 상복.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입는 복으로 3년이나 아버지가 계신데 어머니가 죽었거나 딸이 시집을 갔으면 3년을 입지 못한다.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는다.
∙대공(大功) : 9개월. 종형제나 종자매 등 이에 준하는 사람을 위해 입는다.
∙소공(小功) : 5개월. 증조부모 등 이에 준하는 사람을 위해서 입는다.
∙시마(緦麻) : 3개월. 고조부모를 위해서 입는다. 장인 사위도 이에 준한다.
☞분상(奔喪)·문상(聞喪) : 객지에 나가 있다가 부모의 상을 듣고 돌아오는 것을 일컫는다. 부음을 듣는 즉시 곡을 하며 부고를 가져온 사람에게 절을 하고 흰옷으로 갈아입는다. 집에 돌아오면 상복으로 다시 갈아 입고 시신 앞에 나아가 슬피 곡을 한다.
☞심 상(心喪) : 실제로 상복을 입지 않은 채 마음으로 3년 동안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스승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해서나 또는 적모나 계모, 재가한 어미를 위해서도 이같이 한다.
☞조 상(弔喪) : 조상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조상은 원래 성복 후에 하도록 되어 있는데 성복 전에는 가까운 일가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가서 상주에게만 인사하고 영구에는 절을 하지 않는다. 성복 후라도 망인과 생시에 안면이 없었거나 조객이 여자인 경우 빈소에는 절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인사한다. 전통식 상례의 경우 다음과 같이한다.

조객은 먼저 호상에게 성명을 말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상주는 일어나서 “애고 애고...”하고 곡을 한다. 호상이 조객을 안내하여 영좌 앞으로 가면 조객은 “어이 어이...”하고 슬피 곡을 한 뒤 두 번 절을 한다.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이때 여러 사람이 일행이 되어 왔다면 그중 어른이 대표로 나간다.
집사가 무릎을 꿇고 잔을 조객에게 주고 술을 따른다. 조객이 이것을 다시 집사에게 주어 영좌 앞에 놓게 하고 일어서면, 호상이 상주의 곡을 그치게 한다.
축관이 서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제문을 읽고 조객이 가져온 부의의 명세를 바치고 나면 조객과 상주가 모두 슬피 곡을 한다.
고인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조객은 상주와 맞절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상사 말씀 드릴 길이 없습니다” 등으로 인사하면 상주는 머리를 숙여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대답을 대신하기도 하고 “망극합니다” “원로에 수고하시니 죄송합니다” 등으로 대답하기도 한다(罔極이라는 말은 부모상에만 쓰인다)

☞부 의(賻儀) : 부의를 상가에 보낼 때는 반드시 단자(單子)를 써서 봉투에 넣어 보내야하며, 단자를 접을 때 가능하면 조의 문구나 이름이 접히지 않도록 한다. 단자를 쓰지 않을 때는 봉투에 물목을 쓴다. 조물(弔物)을 보낼 경우 물품은 따로 싸고 단자만 봉투에 넣는다.

☞부의금 단자 서두에 쓰는 문구
초상 때의 문구 : 賻 儀, 謹 弔, 弔 儀, 香燭代
소대상 때의 문구 : 奠 儀, 香奠儀, 菲 儀, 菲 品

☞단자에 ‘金 *** 원’이라고 써야지 영수증을 쓰듯 ‘일금 ** 원정’이라 쓰면 안 된다. 요즈음은 호상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그냥 “부의”라고 써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현대에는 옛날처럼 단자를 가로 한자 두치, 세로 한자 정도의 크기로 할 것이 아니라 요즈음 흔히 쓰는 흰색의 규격 봉투의 크기에 알맞게 즉 부의금을 넣고 다섯 번 접으면 될 정도의 크기나 A4 용지를 위와 같은 양식으로 쓰되 네 번 접어 사용하면 억지로 접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쓰는 법은 위의 두 가지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어느 것이나 맨 첫 칸과 마지막 칸은 비우고 글씨를 쓴 부분이 접히지 않도록 할 것이며, 접을 때는 왼쪽부터 접어 펴서 볼 때 오른쪽부터 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8) 치 장 (治葬)요즈음과는 달리 옛날에는 석 달 만에 장사를 지냈기 때문에, 이에 앞서 장사 지낼 만한 땅을 고르고 준비했다. 묏자리를 정하면 이어 장사 지낼 날짜를 잡는다. 날짜가 정해지면 영역에 산역을 시작하고 토지신에게 사토제(祠土祭)를 지낸다.

9) 만 장 (輓章)
고인을 애도하여 지은 글로서 비단이나 종이에 써서 기를 만들어 상여를 따르도록 하는데 가정 의례 준칙에서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10) 발 인 (發靷)영구가 장지를 향해 떠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견전(遣奠)이라 하여 조전(朝奠)때와 같이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데 이것을 요즈음은 발인제라고 한다. 축관이 술을 따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축문을 읽고 나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고 절한다.(遣奠:발인할 때 영구를 상여에 모시고 문 앞에서 제수를 진설하고 지내는 제사로 상주가 잔을 한 번만 올림으로써 제를 드린다. 친척과 조객도 상주에 이어 분향 재배한다) 제사가 끝나면 집사가 포를 거두어 상여에 넣는 경우도 있다. 이는 효자의 마음에 잠시라도 차마 신도(神道)가 의지할 곳이 없게 되면 어쩔까 염려하여 행하는 일이다.
영구가 떠나면 방상(方相)이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해 간다. 방상이란 초상 때 묘지에서 창을 들고 사방 모퉁이를 지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명정, 공포, 만장, 요여, 요여배행, 영구, 영구 시종, 상주, 복인, 조객의 순서로 출발한다. 요여배행은 복인이 아닌 친척이 하는 것이 예이며, 영구의 시종은 조카나 사위가 하는 것이 예이다. 그러나 요사이는 선도차가 영구를 시종하거나 영구차에 함께 타고 간다.
☞방상시(方相氏) : 가면을 쓰고 상여 앞에 나가며 잡귀를 쫓는 역으로, 눈을 부릅뜬 무서운 형상으로, 大夫라고해서, 벼슬한 사람은 눈 넷 달린 것을 쓰고, 일반인은 둘 있는 것을 썼다. 붉은 저고리에 검은 아랫도리를 입었다.(氏:시라고 읽는다)
☞명정(銘旌) : 이 장의가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깃발이라 맨 앞에 선다.
☞공포(功布) : 흰 베로 기를 만들어 명정 뒤를 따르는데 길이 좋고 나쁨을 알리는 신호기 역할을 하며 하관 했을 때 관 위를 닦는 소용으로 쓰인다.
☞만장(輓章) : 고인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을 지어 비단폭 등 여러 색깔의 천에 써서 명정과 같은 형식으로 꾸며 장의 행렬에 끼인다.
☞영여(靈輿,요여라고도 함) : 혼백을 모시는 상여로 발인할 때에는 혼백 뒤에 신주 상자를 모시고 반혼 때는 신주 뒤에 혼백상자를 모신다.
☞혼백(魂帛) : 죽은 이의 혼령이 깃들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주를 만들기 전에 흰 비단 또는 마포나 백지로 접어서 만들며, 빈소에 모셨다가 초우가 끝나면 깨끗한 곳에 묻는다. 남의 집에서 초우를 행했으면 반듯이 삼우까지는 집에 와서 혼백을 묻는다. 요즈음에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혼백(魂帛)접는 법

죽은 이의 혼령이 깃들어 있음을 상징하는 혼백은 세로는 한폭, 가로는 1자3치 정도의 삼베나 모시 등으로 접는데 1치5푼씩 8겹으로 접으면 남는 것이 1치가 되어 위와 같은 모양이 된다. 왼쪽부터 번호를 붙여 1-9까지 정한다.
1면을 왼쪽으로 접어 2면과 맞닿게 하고, 다시 3면 이하를 오른쪽으로 접어 3의 전면이 1의 뒷면과 겹치게 한다. 다음 3의 한가운데를 접어 다시 왼쪽으로 접고, 이어 4이하를 뒤로 접어4의 뒷면이 2의 뒷면에 맞닿게 한다. 5이하를 앞을 감싸게 하여 다시 왼쪽으로 접으면 5-9면이 보이게 된다.
다시 5의 절반을 접어 오른쪽으로 접은 후 6면과 4면이 마주하게끔 뒤로하여 오른쪽으로 접는다. 다시 7면을 뒤로 접어 7면과 6면의 뒷면이 서로 맞닿게 한다. 다시 7면과 8면이 맞닿게 뒤로하여 오른쪽으로 접는다.(오른쪽은 반씩 접힌 부분이 보이고 왼쪽은 9면이 보인다) 4면과 6면 사이를 벌리면 7면 8면이 맞닿게 되어 4, 6, 9면이 보인다. 아래쪽 약 3CM 정도를 앞으로 접는다(접힌 부분은 전면끼리 맞닿는다)
그 상태에서 다시 7면과 8면을 벌려 윗쪽 약 3CM 정도를 앞에서와 같이 접은 후 벌린 부분을 오므리면 다시 오른쪽은 반씩 접힌 부분이 왼쪽은 9면이 보이게 된다.

9면을 앞으로 하여 왼쪽으로 접어 틈 사이에 끼우면 된다. 3면 5면의 반씩 접혀 맞닿은 부분이 앞이 되고 8면의 뒷부분이 혼백의 뒤가 된다.
그림과 같이 윗부분을 백지로 만들어 표시하거나 또는 가운데 부분을 3CM 정도의 백지로 띠를 두르고 뒤의 이음새 윗부분에 상(上)자 표시를 하여 언제든지 上자가 서쪽을 향하여야 한다. 백색의 두꺼운 종이로 상자를 만들어 초혼할 때 썼던 옷을 흰 종이로 싸서 넣고 그 위에 혼백을 얹어 뚜껑을 닫아 놓았다가 혼백 상좌를 영좌의 사진 앞에 모시고 뚜껑을 열어 놓는다.

11) 하 관 (下棺)하관할 때 상주들은 곡을 그치고 하관 하는 것을 살펴본다. 혹 다른 물건이 광중으로 떨어지거나 영구가 비뚤어지지 않는가를 살핀다. 하관이 끝나면 풀솜으로 관을 깨끗이 닦고 나서 구의(柩衣)와 명정을 정리해서 관 한복판에 덮는다. 집사자가 현훈을 가져다가 상주에게 주면 상주는 이것을 받아서 축관에게 주고 축관은 이것을 받들고 광중에 들어가 관의 동쪽, 즉 시신의 왼편에 바친다. 이때 상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슬피 곡을 한다. 현훈이란 폐백으로 쓰는 흑색과 홍색의 비단을 말하는데 이것을 동심결로 묶는다.
☞동심결(同心結) : 오색실로 만든 특정한 모양의 고리 형태

12) 제 주 (題主) : 신주에 글씨를 쓰는 일이다.
13) 반 곡 (反哭) : 주상 이하 신주와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 온다
14) 궤 연 (几筵)상청이라고도 하는데 주상이 상복을 입는 동안 영좌를 모시는 장소로 조용한 방에 병풍을 치고 교의를 놓고 교의 위에 신주를 모시고 그 앞에 제상 향안을 배설한다. 죽은 이가 평소에 쓰던 물건들을 궤연에 배설한다.
㉠상식(上食) : 궤연을 모시는 동안 조석으로 상을 차려 올리는 일이다.
㉡삭망(朔望) : 매월 초하루 보름에 상식보다 낫게 상을 차려 올리는 일이다.

15) 초 우 (初虞)
장례를 지낸 그 날 중으로 지내는 제사로 상주 이하 모두가 목욕을 하지만 빗질은 하지 않는다. 이 초우부터는 정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즉 우반좌갱을 한다. 정해진 절차가 끝나면 축관이 혼백을 정갈한 땅속에 묻는다.

16) 재 우 (再虞)
초우가 지난 후 유일(柔日)을 당하면 지내는데, 유일이란 일진에 을(乙)·정(丁)·기(己) 신(辛)·계(癸)가 들어가는 날이다. 제사 지내는 법은 초우 때와 마찬가지다. 당일 동이 트면 일찍 일어나 제수를 진설하고 날이 밝으려고 할 때 지낸다.

17) 삼 우 (三虞)
재우를 지낸 뒤 강일(剛日)을 당하면 지내는데 강일이란 일진에 갑(甲)·병(丙)·무(戊) 경(庚)·임(壬)이 들어가는 날이다. 제사 지내는 법은 전과 같다.
18) 졸 곡 (卒哭)
삼우가 끝난 후 3개월이 지나서 강일을 당하면 지낸다. 제사 지내는 법은 삼우 때와 같으나 다만 이때부터는 조석으로만 곡(朝夕哭)을 한다.
졸곡이 지나면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잠 잘 때는 목침을 벤다. 졸곡이 지나면 다른 제사 즉 절사와 기제 묘제를 지내되 제수는 보통 때보다 한 등급 감해서 지낸다. 우제까지는 축이 주상의 오른쪽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읽었으나 졸곡부터는 길사이기 때문에 축문을 주상의 왼쪽에서 읽는다.
19) 부 제 (祔祭)
졸곡을 지낸 다음날 지내는 제사로 죽은이가 남자면 할아버지 여자면 시할머니의 신주 앞에 죽은 이의 신주를 붙여서 모시는 제사로, 차림은 같지만 다만 사당에서 지내는 것이 다르며 사당이 없으면 지낼 필요가 없다. 신주를 모실 때는 축관이 독을 열고 먼저 조고(祖考)의 신주를 받들어 내다가 영좌에 놓고, 다음에 내집사가 조비의 신주를 받들어 내다가 그 동쪽에 놓는다. 이 절차가 끝나면 상주 이하가 영좌로 나가 곡하고, 축관이 새 신주의 주독(主櫝)을 받들고 사당으로 들어가 영좌에 놓는다. 어머니상에는 할아버지의 신주를 모시지 않는다. 새 신주를 모실 때는 향을 피운다. 여기서부터는 우제 때와 같이 제사를 지내고 초헌 후에 축문을 읽고 나서 먼저 모셔 내온 조고 조비의 신주를 도로 모시고 새 신주를 모시는 것으로 제사를 끝낸다.

20) 소 상 (小祥)
초상을 치른지 만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로 윤달과 상관없이 지낸다. 즉 기일에 제사를 지낸다. 제사 절차는 졸곡과 같다. 다만 아버지가 계신데 어머니를 위해서는 11개월만에 소상이고 한달 지난 후에 대상이 된다. 그리고 아내를 위한 기년상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변복(變服)으로는 연복(練服)을 입게 되므로 이것을 준비해야 되고 남자는 수질(건 위에 쓰는 것)을 벗고 주부는 요질(교대 위에 매는 허리띠)을 벗는다.
또 기년복만 입는 사람은 길복(吉服)으로 갈아입는다. 연복이란 빨아서 다듬는 옷을 말한다.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 강신하기 전에 모든 복인이 연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 곡하는데 강신에서 사신까지의 의식 절차는 역시 졸곡 때와 같다.

21) 대 상 (大祥)
초상 후 만 2년만에 지낸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는 일년만에 지낸다. 제사의 절차는 소상 때와 같다. 사당에는 새 신주를 모셔야 하므로 먼저 고하고 대상이 끝나면 즉시 부(祔)한다. 이 제사에는 남자는 백직령에 백립을 쓰고 백화를 신으며 부인은 흰 옷에 흰 신을 신는다. 이 제사로 상복을 벗고, 젓갈이나 간장, 포 같은 것을 먹는다. 대상이 끝나면 궤연을 없애므로 신주는 사당으로 모시게 된다.
22) 담 제 (禫祭)
복을 벗는 제사로 대상을 지낸 후 한 달을 사이에 두고 지낸다.

23) 길 제 (吉祭)
담제를 지낸 다음다음 달에 일진에 丁·亥가 드는 날을 골라 지낸다. 죽은 이가 장자손일때 웃대 신주를 고쳐 쓰는 제사이다. 죽은 이가 장자손이 아니거나 사당이 없는 집에서는 지낼 필요가 없다.

● 조문객의 옷차림
남자는 검정색 양복이 원칙이나 미처 준비되지 않은 경우는 감색이나 회색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셔츠는 반드시 흰색으로 넥타이 양말 구두는 검정색으로 한다. 여자는 검정색 상의에 검정색 스커트가 무난하다. 스타킹 장갑 핸드백도 검정색이 좋다. 색채 화장은 피하는 것이 좋다.
● 조문 받는 예절
상중에는 출입객이 많으므로 방이나 거실의 작은 세간들은 치워 되도록 넓은 공간을 사용하도록 하고 벽에 걸린 화려한 그림이나 장식은 뗀다. 겨울에는 현관에 외투 걸이를 준비해 두면 편리하다. 상제는 근신하고 애도하는 자세로 영좌가 마련되어 있는 방에서 조객을 맞이한다. 상제는 영좌를 모신 방을 지켜야하므로 조객을 일일이 전송하지 않아도 된다.

•노 제(路祭)
집을 출발하여 묘지에 이르는 도중 길거리에서 지내는 제사로 고인과 절친했던 친구나 친척이 조전자(弔奠者)가 되어 제물을 준비했다가 올리는데 운구 도중 적당한 장소에서 영여를 모시고 조전자가 분향 후 술을 올리고 제문을 읽으면 모두 두 번 절한다.
•삼 우
요즈음은 초우와 재우를 생략하고 장례 후 3일째 되는 날에 첫 성묘를 하고 봉분이 잘 되어 있는지 등을 살피고 간단히 제사를 지낸다.
•탈 상
가정의례준칙에 부모, 조부모, 배우자의 경우 별세한 날로부터 100일까지이고 그 밖의 경우는 장례일까지 이다. 탈상제는 기제에 준해 지낸다.
•비 석
장례 날에 부탁하여 첫 성묘를 하는 날에 세우거나, 청명 한식 추석 성묘 때 하도록한다. 오석(烏石)이 가장 좋고 다음이 황등석 애석 등이지만 보통은 화강암을 많이 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묘지를 표시하기 위해 묘지 앞 지하에 묻는 표지를 지석이라 하고 묘지 옆에 세우는 표지 돌을 표석이라 한다. 지석은 대개 두 장의 돌로 만들어 양쪽에 글을 새기고 글 새긴 곳을 맞붙여 묘지의 발치에 묻는다. 지석 웃돌에는 國籍 職名 職位 本貫 姓名公(氏)之墓라고 새기고 지석 아랫돌에는 國籍 職名 職位 本貫 姓名 公(氏),고조까지의 직계 조상, 考名, 妣本貫성명, 生年月日時, 卒年月日時, 매장 년월일시, 묘지 소재지, 배우자 職 본관 성명, 자녀의 직명과 이름, 죽은이의 약력 등을 새긴다. 표석의 규격은 높이 120CM 이하의 돌에 전면에 지석 웃돌과 같이 새기고 좌우와 뒷면에는 지석 아랫돌의 내용을 새긴다.

●장례 후의 뒷처리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는 집안을 정리하고 고인의 유품 영정등을 잘 챙겨 놓는다. 자칫 잘못하면 이때 집안의 가보나 귀중한 자료 등이 부주의로 유실되는 수가 많으니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신경을 쓸 일이다.
그 동안 애쓴 호상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드리도록 하고 문상객들에게는 감사의 인사장을 보내도록 하고 호상에게는 특별히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예의이다.

●조문하는 방법
요즈음은 곡을 한다거나 술을 따르지 않으므로 다음과 같이한다.
①손님이 상가에 도착하면 먼저 호상소로 가서 조객록이나 조위록에 자기의 주소 성명을 기록한다.
②호상소에서는 정중히 인사하고 영좌 앞으로 안내한다.
③주상 주부 이하 복인들이 일어나서 흉사시의 공수를 하고 슬픔을 나타낸다.
④손님은 향안 앞으로 가서 향을 한번이나 세 번 사르고 흉사시의 공수를 하고 서서 잠시 죽은이를 추모하는 슬픔을 나타낸다.
⑤영좌가 입식으로 설치되었으면 허리를 굽혀 한 번 경례하고 좌식으로 되어 있으면 전통배례로 두 번 절한다. 죽은 이가 평소 절을 하지 않을 정도로 아랫 사람이면 절을 하지 않는다.
⑥약간 뒤로 물러나서 상제가 있는 쪽을 향한다.
⑦상제가 먼저 경례 또는 절하면 손님이 맞절 또는 답배를 한다. 이때도 평소에 절을 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쪽에서는 절하지 않고 아랫사람 쪽에서만 절한다.
⑧좌식 장소면 꿇어앉고 입식 장소면 공손히 서서 손님이 먼저 인사한다.
⑨누가 죽었든 간에 얼마나 슬프십니까 하면 된다.
⑩상제도 오직 슬플 따름입니다 하면 된다.
⑪다시 호상소에 가서 준비된 부조금을 내놓고 호상소에서는 그 내용을 부의록에 기록한다. 
실제로는 상가의 구조 때문인지 ①에서 부조금도 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이들은 문상을 가서 고인에게 재배하고, 상주에게 절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며 또한 예의에 맞는다고도 한다. 이는 그 어떤 말도 상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이 될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오히려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 더욱 더 깊은 조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 이때 상주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진정으로 슬픈 표정만큼 더 정확한 말은 없다. 또 아무리 돌아가신 분이 천수를 다했더라도 ‘호상입니다’하는 말은 문상객끼리라면 몰라도 상주에게는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상가에서의 언행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름하는 장소 이기도하다. 그리고 그 장소는 상제의 슬픔과 고통을 나누어 가지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가친척이나 친구들이 와서 밤을 새워 상제를 위로한다.
요즈음의 젊은 상제들은 문상객에게 화투판을 마련해 주거나 가까운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끼어서 술을 한 두 잔 나누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격식을 갖춘 전통 예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상가의 화제는 죽은 이를 추모하거나 자손들의 효성을 칭송하거나 장례 절차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절대로 잡담이나 큰소리 등으로 무례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문상을 갈 수 없을 때에는 편지나 전보를 보낸다. (이를 조장 또는 조전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부고를 냈는데도 문상을 오지 않았거나 적어도 편지나 전보조차 보내 오지 않은 사람은 후에 만나도 대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장(弔狀)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반듯이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상례 절차이나 최근에는 초우 재우를 생략하고 삼우만을 지내고 졸곡이나 부제도 없이 탈상을 하는 절차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해는 된다. 이와 같이 절차를 간소화하는 경향은 세월이 지날 수록 심화될 것이나 일부에서처럼 삼우가 끝나면 소상 대상도 없이 바로 탈상하는 것과 같은 상스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정의례준칙 제11조 1항에도 부모, 조부모와 배우자의 상기(喪期)는 사망한 날로부터 1 백일까지로, 기타의 자의 상기는 장일까지로 한다고 되어 있고, 2항에는 상기 중 신위를 모셔 두는 궤연은 설치하지 아니하고 탈상제는 기제에 준한다고 했다.
하물며 탈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는지 봉분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상복을 경쟁이나 하듯 훌훌 벗어 태우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옛날과 같이 특별한 형태의 상복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남자는 검은 양복에 흰셔츠 검은 넥타이를, 여자는 검은 치마저고리를 준비해 두었다가 평소에도 필요한 때는 입도록 하고 막상 일을 당하게 되면 왼쪽 가슴에 상장이나 완장만 별도로 사용해 상제임을 표시하고 탈상할 때도 그 상장만 태우는 것으로 해서 탈상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탈상하기 전까지는 평상시의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 정도의 범위 내에서, 검소하고 소박하게 지내도록 하고 행동에 조심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특별히 복을 벗는 담제나 길제도 필요 없을 것이라 믿는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앞으로는 이 상례에 많은 변화가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즉 사후에 장기를 기증한다든지 또는 시신을 연구용으로 제공하게 된다든지 또는 매장이 아닌 화장을 하게 된다든지 하는 문제이다. 국토 면적 운운은 차치하고서라도 각자의 인생관에 따를 일이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썩어 없어질 육신이라면 차라리 화장하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남자라고 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외롭고 답답할 때가 수없이 많이 생기게 되는 법인데 이러한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의 산소에 찾아가 하소연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가장 잘 풀린다고들 한다. 어찌 생각하면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처럼 가장 진솔해질 수 있어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어떤 결심을 할 때 커다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항상 산 사람 위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대에서 부모의 묘를 없애기가 어렵다면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예를 들어 세일사로 옮겨질 때 파묘해서 납골당에 모신다든가 화장해서 산이나 강에 뿌려 자연으로 돌려보내도 좋을 것이다.

주위 여건 등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져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아버지의 생각으로는 아버지가 죽으면 별도의 수의도 마련할 필요 없이 평소에 입던 옷 중에서 골라 입히고 화장해서 맑고 푸른 남태평양에 소산해 주었으면 한다. 남태평양에 뿌리는 것이 번거로우면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는 산길도 좋다. 만일 연구 기관에서 필요하다면 필요한 장기나 시신을 기증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 문중이 번창한 집안은 아니더라도 예절을 중하게 여기는 집안이니 어머니 상에 “顯考學生府君神位”하는 낯 뜨거운 일은 없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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