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1일 일요일

제례

제 례 (祭 禮)

제례는 한마디로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조상 숭배는 자손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이다.
근래에 이르러 물질문명의 발달로, 이 제례 의식이 인간의 진정보다는, 남에게 내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겉치레와 사회적인 과시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거니와, 더 나아가서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질하고 있어,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이제 여러 집안의 제례 풍습을 참고삼아 우리 집안의 가통을 이어 나갈 법도를 새롭게 정리하여 장손이나 지손이나를 막론하고 후손들로 하여금 연년세세 이어 나가게 하고자 함이니 반듯이 따르도록 할 것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 祭禮章(제례장)에,“祭祀(제사)는 當依家禮(당의가례)하되 必立祠堂(필립사당)하여 以奉先主(이봉선주)하고 置祭田(치제전)하고 具祭器(구제기)하여 宗子主之(종자주지)니라”(제사는 마땅히 주자 가례에 따라 지내되 꼭 사당을 건립하여 여기에 선조의 신주를 모셔 놓고 제전을 설치하고 제기를 구비하여 종자가 이를 주관할 것이다)했으나 현대 생활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차후 시대의 발전에 따라,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되, 심사숙고하여 함부로 법도를 흐리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신앙을 빙자하여 우상 숭배 운운하는 자들도 있어 미리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바이니 명심하도록 할 것이다. 내 부모 내 조상을 섬기고 받드는 일, 다시 말해 나를 존재하게끔 해준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제례 의식이 결코 우상 숭배가 될 수 없으며 설혹 강신이니 참신이니 하는 용어라던가 재배니 사배니 하는 의식 자체가 부담스럽다 하더라도 가톨릭에서의 미사처럼 의식을 수행하는 하나의 절차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앞으로 반듯이 후손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에 대해 언급하겠는데 조상답지 않은 조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 자식 대에서는 나를 낳아 준 부모이니만큼 누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겠으나 그 후대로부터는 강제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조상답지 않은 조상이란 축첩을 한다든가 조강지처를 함부로 버린다든가 가문을 더럽히는 죄를 저지른다든가 함을 의미한다.

새삼스레 이 제례 의식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이유는, 종교적 성격을 띤 이 제례의식들이, 은연중에 혈연의 유대 강화 즉 인륜 도덕의 숭상을 진작함은 물론 이러한 형식을 지켜나감으로써 어떤 일정한 격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격은 기품 있는 인격을 형성할 수 있도록 각자의 마음에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나날이 발전되고 번영된 집안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이 사회가 이처럼 극도로 혼란스럽고 험악해진 것도 서로의 품위와 인격을 존중하지 않음에 기인한 것이니 모름지기 후손들은 이 점에 유의하여 매사 신중히 처신하여야 할 것이다.
무릇 제사에는 사당참례 삭망참례 시제 기제 이제 묘제 연중절사 천신의 등이 있으나 현재와 같이 복잡하고도 다양화된 사회 여건하에서는 이러한 모든 격식을 다 갖출 수는 없는지라 우선은 기제와 연중절사만 지켜진다면 되리라 생각한다.

“凡祭(범제)는 主於盡愛敬之誠而已(주어진애경지성이이)니라 貧則稱家之有無(빈즉칭가지유무)요 疾則量筋力而行之(질측양근력이행지)니 財力可及者(재력가급자)는 自當如儀(자당여의)니라”라고 했듯이 무릇 제사는 사랑하고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데 의의가 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형편에 맞게 할 것이요 몸이 불편하면 근력에 따라 행할 것이고 재력을 갖추어 가능한 사람이면 마땅히 예법대로 할 것이다. 다만 부부가 함께 친히 행하여야 하는데 삼일재(三日齋)하고 칠일계(七日戒)한다면 비록 간략하게 차렸다 하더라도 그 정성에 신도(神道)가 감응할 것이다.

흔히들 인척간에 분란이 일어나는 이유가 하찮은 오해나 사소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바, 제수에 드는 비용은 반듯이 장자 혼자서 책임지도록 하되 장자의 형편에 따라 과도하지 않게 할 것이며 대신 지차 이하는 종부의 지휘를 받아 제수 준비에 정성을 다하도록 할 것이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이렇게 함으로써 혈연 간의 유대 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고, 소속감 내지는 일체감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한 혈연집단의 자랑스러운 구성원임을 항상 명심함은 물론 모든 행동의 지표가 되도록 하여 각자가 집안의 끊임없는 번영을 위해 이바지하고 있음을 주지시키고자 함이지 결코 허례허식을 조장함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부 사항은 그때그때 자세하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제사의 종류
1. 사당참례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종가의 정침(正寢) 동쪽에 마련하고, 종손이 이를 지키며 참례하는 의식을 말한다. 여기서 정침이란 안채나 사랑채의 중심이 되는 방으로 안채의 것은 大房, 사랑채의 것은 큰사랑이라고 하는데, 대방에서(또는 대방 마님께서) 큰사랑에서(또는 큰사랑 어른께서)와 같이 그대로 거기 거처하는 주인의 호칭으로도 쓰이는데 여기서는 제사를 지내는 방을 말한다. 사당(祠堂·家廟)이란 그 집주인의 부모, 조부모 증조 부모, 고조 부모 4대의 신주를 모셔 두는 곳으로 평소에도 주인은 새벽에 일어나면 의복을 단정하게 갖추어 입고 분향재배하고, 정조(正朝) 동지 삭일(음력 초하루) 망일(음력 보름)에는 참례하고, 장자를 낳는다든가 벼슬을 한다든가 이사를 하는 등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당에 고하고, 출입할 때도 고하는 그야말로 집안에서 가장 신성하고도 엄숙한 장소로, 사당을 따로 지을 형편이 못 될 때는 실례 안 될만한 적당한 곳에 감실(龕室 : 사당 안에 신주를 넣어 두는 장)을 마련하여 이를 대신한다.

서울 지방에서는 대청의 정면 일부에 사당 벽장을 설치하였고, 대들보와 벽면을 걸쳐 시렁을 매고 여기에다 제기고에 두어야 할 물건들을 소중하게 보관했었다. 제사 지내는 날 하루 전에 사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재계(齋戒 : 부정한 일을 멀리하고 심신을 깨끗이 하는 일)하고 출주 강신 헌작 사신 납주 철의 순서를 거친다. 작금 우리에게는 사당이라는 것이 종교적 내지는 장소가 비좁다는 등의 구차한 이유로 해서 사라지고 있는데 반해 서양인들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거실 벽면에 조상의 사진이나 초상을 걸어 놓고 자손들은 그 주인공의 내력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방문객들에게 자랑스럽게 들려주는 것을 보는데 우리도 무조건 없애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향으로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삭망참례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사당에 제사 지내는 의식을 말한다.

3. 시 제
고조 부모(4대조)까지의 조상이 사시제의 대상이다. 1년에 4번, 철 따라 그 가운데 달(仲月)의 丁日(정일)이나 亥日(해일)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원래는 택일하는 방법이 별도로 있으나 집안 사정을 고려해서 전달 하순에 정하는 것이 가하리라고 생각된다. 제사 3일을 앞두고 재계하고, 하루 전날에는 정침을 깨끗이 청소하고 신주 모실 자리를 마련한다. 방 한가운데에 향탁을 놓고 그 위에 향로 향합 촛대를 놓는다. 주부는 제기를 갖추어 손질하고 제찬을 정결하게 마련한다.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 두고 날이 밝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촛불을 끄고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는 사당으로 나아가 분향한 뒤 신주를 정침으로 내모신다. 제사 지내는 순서는 참신 강신 진찬 초헌 아헌 종헌 유식 합문 계문 수조 사신 납주 철 준(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의 순서를 거친다.
“사례편람”에는 시제야말로 제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되어 있고, 열양세시기에도“國俗重忌祭(국속중기재) 不重時祭(부중시제) 未免夷陋(미면이루) 至本朝中葉(지본조중엽) 儒賢輩出(유현배출) 士大夫多好禮者(사대부다호예자) 始以時祭爲重(시이시제위중) 而大抵貧儉(이대저빈검) 鮮能行四時祭止(선능행사시제지) 行於春秋二時而(행어춘추이시이) 春用重三(춘용중삼) 秋用重九者(추용중구자) 爲多(위다)”(나라 풍속에 기제사는 중요하게 여겨도 시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이는 오랑캐의 습속을 면하지 못한 악습이다. 이조 중엽에 이르러 어진 선비가 많이 나오고 사대부중에 예절을 숭상하는 자가 많아져 비로소 시제를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성은 대부분 가난해 네 계절의 시제를 빠짐없이 지내는 이는 드물고 봄의 삼짇날과 가을의 중양절에만 지내는 사람이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요즈음에는 이 시제를 거의 지내지 않는다. 5대조 이상은 세일제로 한다.

4. 기 제
매년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5. 이 제
음력 9월 부모 영전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여느 방친들의 제사와는 달리 부모의 은혜를 잊을 길이 없어 추수를 마치게 되면 새삼 부모에 대한 사모의 정을 이기지 못하여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정성스럽게 제수를 마련하여 제를 지내는 것이다.
6. 세일제(歲一祀)
흔히 묘제라고도 하는데, 묘제란 산소에서 지내는 모든 제사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세일제가 정확한 용어이다. 5대조 이상의 조상 묘에 해마다 한번 드리는 제사로 3월 또는 10월 중의 어느 날을 잡아 지낸다.
7. 천신의
철에 따라 새로 나온 곡식으로 만든 음식이나 과일 등을 사당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8. 사갑제회갑 전에 돌아가신 부모의 회갑이 되는 날 드리는 제사로서 갑사(甲祀)라고도 한다. 의식은 기제와 같으나 축을 읽은 다음 차남을 비롯한 근친들이 모두 잔을 올린다.
9. 생신제
돌아가신 부모의 생일에 지내는 제사로 삼상(三祥)을 지내기 전에만 지낸다.

10. 연중절사(年中節祀)
오늘날 집에서 지내는 제사는 크게 기일제와 차례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기일제는 그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이므로, 돌아가신 분과 그 배우자를 함께 지내며, 차례는 설날 한식 추석 등 명절에 지내는 제사로 자기 집에서 기일제를 받들고 있는 모든 조상을 대상으로, 설날은 집에서, 한식과 추석은 각 조상의 묘지에서 지낸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에는 집에서 지낼 수 있다.
고례에는, 차례라는 말이 없어 확실하게 그 유래를 밝힐 수는 없으나, 중국에서 망참에 간단하게 차 한 잔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이것을 차례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가 조상을 가장 간략하게 받드는 것이 명절의 예이기 때문에 차례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 같다.

(1) 연 시 제
정월 초하룻날 아침 집에서 세배로 드리는 차례를 말한다. 의식은 사시제와 같으나 요즈음은 축문을 읽지 않는다.
또한 헌작도 한 번뿐이다. 제수의 진설은 똑같으나 메 대신 떡국으로 한다(떡국차례). 종가에서는 고조 부모까지 4대를 봉사하지만, 지차와 그 이하는 종가에 갈 수 없을 때 부모만을 대상으로 한다.
향안 소탁 주가 모사기는 하나만 있으면 되고, 교의 젯상 제기 지방 등은 조상마다 내외분씩 따로 차리는 것이 원칙이나 현실적으로는 봉사 대상이 되는 여러 분을 한꺼번에 모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때는 떡국(메와 갱)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지내는 방법도 있을 게고, 떡국(메와 갱)을 계속 바꾸어 올리는 법도 있을 것이다. 지방은 합사하는 경우 한 종이에 나란히 써도 좋을 것이고(이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높은 분부터 쓴다) 내외분씩 따로 써도 무방할 것이다.
(2) 한식성묘
청명 다음날로, 동짓날로부터 1백 5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에는 묘지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물론 부득이하면 집에서 지내기도 한다. 한식날 성묘는 중국 당나라 현종 개원 20년에 칙명으로 이날 산소에 가서 절하는 것을 허락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성묘는 봄에는 한식, 여름에는 단오, 가을에는 추석, 겨울에는 동지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후 관계 등으로 산소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어 이를 살피고자 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풍습에는 흔히 재배만 하고, 물러 나오기도 하나 간단한 제수를 갖추어 분묘를 매만져 다듬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최근의 유행대로 간단히 꽃 몇 송이로 대신해도 가할까 한다.
분묘를 개축한다거나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의식이 있으나 이는 자칫 미신과도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되니 그때그때 시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면 무난하다 할 것이다. 특히 성묘할 때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방친의 묘라도 선영에 있으면 한 번의 재배는 불가피하다고 했듯이 필히 둘러볼 일이다.

(3) 추석차례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한가위·가윗날·중추절·가배일이라고도 하는데 서양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의미라고 할까.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돌아와 햇곡식으로 제수를 마련하여 전을 올리고 성묘를 하며 벌초를 한다.
봉사 대상은 자기 집에서 기일제를 받들고 있는 모든 조상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직계 조상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지방을 “선조 여러 어른 신위”라고 쓴다. 식은 기제와 같으나 역시 무축 단작이다.
열양세시기에 ‘사대부 이상의 집에서는 설날 한식 추석 동지의 네 명절에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설날과 동지는 제사를 안 지내는 수도 있으나 한식과 추석에는 성대하게 지낸다. 한식 때보다는 추석에 더 풍성하게 지낸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유자후가 병졸 노예 고용인 거지 등 모두가 부모의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날은 이날뿐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것을 말함이다.’라고 했다.

기 제(忌祭)

기제라 함은 돌아가신 날을 슬퍼하고 애틋한 사모의 정을 되사기는 날이다. 기일을 당하는 신위만 제사를 받는다.
주자가례(朱子家禮)는 한 분의 위(位)만을 설치한다고 했고, 정자(程子)의 제례는 고와 비, 즉 두 분을 배향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고비(考妣)를 합사(合祀)로 지내도록 하자.
통상은 4대조까지 봉사하는 것이 원칙(4대 봉사라 함)이라고 하겠으나 제주의 위치에서 얼굴을 뵌 분보다 1대 윗분까지만 지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단 양력이든 음력이든 처음에 정해진 대로 할 것이다.

1. 祭拜(제배 : 제례 때 절하는 방법)
우리 예법에는, 길사(吉事) 흉사(凶事)에 따라, 또 남녀에 따라 공수하는 방법이 다르다. 흔히들 보면 공수하는 방법을 몰라 고두배처럼 두 손을 벌리고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예의를 모르는 부끄러운 짓이다.
여기서 길사란 관례 혼례 등을 일컫는 말이고 흉사란 상례를 일컫는 말인데, 제의례는 흉사가 아니다. 조상의 제사는 자손이 있어서 조상을 받드는 것이니까 길한 일이라고 해석한다. 흉사는 사람이 죽은 때를 말하는 것으로 자기가 상주 노릇을 하거나 남의 상가에 인사할 때나 영결식에 참석하는 것이 흉사다. 흉사의 공수는 사람이 죽어서 약 100일 만에 지내는 졸곡제 직전까지의 행사에 참석할 때만 하는 것이다.
제례시 모든 참사자가 절하게 되는 경우는 참신과 사신의 두 경우이니 착오 없기 바란다. 이처럼 일일이 세부 사항까지도 언급하는 이유는 장자의 손(孫)은 집에서 일상적으로 지내던 일이라 대사를 치르게 되더라도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지차의 손(孫)이 2-3대 내려간다든가 뜻밖에 조실부모하게 되면 예를 갖추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본의 아니게 예를 잃고 안타까워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어 이와 같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이다. 남자나 여자나
통상 아래의 순서로 제배를 한다.

2. 제배의 방법

• 국궁(鞠躬) : 몸을 굽힌다는 뜻으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서 있는다.
• 읍(揖) : 두 손을 눈높이 정도로 쳐들었다가
• 궤(跪) :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를 편다. 이때 두 손은 무릎 위에 있다.
• 공수(拱手) :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하는 뜻을 나타내는 예로, 남자는 길사 시 왼손, 흉사 시 오른 손이 위로 오도록 하며, 여자는 반대로 하는데 여기서는 손을 턱 앞에 모은 자세이다.
• 배(拜) :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머리를 굽혀 등허리가 바닥과 수평이 되게 한다.
• 흥(興) : 일어난다.
☞ 평신(平身) : 자유롭게 선 자세를 말하는데, 큰제사의 사배(四拜)는 鞠躬(국궁) ─ 跪(궤) ─ 拜(배) ─ 興(흥) ─ 拜 ─ 興 ─ 拜 ─ 興 ─ 拜 ─ 興 ─ 平身(평신)의 순서가 된다.

3. 지방과 축문을 쓰는 법
먼저 앞으로 흔히 겪어야 할 어려운 점을 감안 신주(神主)나 지방(紙榜),축문(祝文)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제례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종교인들이 미신이라고 매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지방이라는 것 때문이기도 한데 원래 그 유래를 살펴보면 애초에는 영정을 모시는 것이 원칙이어서 초상을 그려서 사용했었으나 옛날 사람들이 영정을 그리다 보니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아 민망하므로 이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등장한 것이 신주라는 것이었고 이 신주를 임시로 대신하는 것이 지방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대상이 되는 분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일 뿐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사진술의 발달로 다시 영정을 모시는 사례가 많아졌으나 조부나 증조부대 이상은 영정이 거의 없을 것임을 감안하면 아직은 지방이나 신주를 모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따라서 신주나 지방은 고인의 존영이 있다면 존영으로 대신해도 무방하고 굳이 지방과 사진을 같이 쓸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또 축문은 순수한 우리 글로 써도 좋을 것이다.

지방을 만드는 법은 원래 길이 2자, 넓이 2자 6치의 백지를 접어서 쓰는 전통식이 있으나 요즈음은 고인의 사진으로 대신하거나 아래에서 언급하는 것과 같이 약식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우선 지방을 쓰는 법은 이러하다.
지방을 쓸 때에는 반듯이 몸을 청결하게 하고 정성을 들여 쓰되 제사가 드는 날 저녁, 폭이 6CM 정도 길이가 22CM 정도 되는 흰 백지(보통은 한지) 위에 붓으로 쓰는데, 고위(考位:아버지 등)는 왼쪽에 비위(妣位:어머니 등)는 오른쪽에 쓰는 법이다. 한 분만 돌아가셨을 때는 돌아가신 분만 중앙에 쓴다. 왼쪽 아래에는 奉祀라고 봉사자 이름을 쓰기도 한다(처나 아랫사람이면 行祀라고 쓴다).
                        
☞㉠ 현고·현비는 돌아가신 아버지·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아버지·어머니를 의미하는 考(고)·妣(비) 대신에 할아버지·할머니이면 祖考(조고)·祖妣(조비), 증조부모이면 曾祖考(증조고)·曾祖妣(증조비), 고조부모이면 高祖考(고조고)·高祖妣(고조비)라고 쓰면 된다. 백부모는 伯父(백부)·伯母(백모), 숙부모는 叔父(숙부)·叔母(숙모)라고 쓴다.

☞㉡ 처의 경우는“顯”자를 안 쓰고“亡”자를 쓴다. 즉“망실유인○본○관○성○씨신위(亡室孺人本貫姓氏神位)”

☞㉢ 동생 이하 卑幼(비유 : 자신보다 항렬이 낮은 사람이나 동생)에도“顯”자 대신“亡(망)”자를 쓴다.
동생 : 亡弟學生 (이름) 神位
자식 : 亡子學生 (이름) 神位 (기혼) 
         : 亡子秀才 (이름) 神位 (미혼)

☞㉣ 요즈음에도 관직에 있었으면“學生”대신에“관직명”을 쓰고,“孺人”대신에“夫人”을 쓴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쭙잖은 일이다. 학생이란 공부는 했으나 아무 벼슬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유인은 원래 9품 외명부의 호칭으로 그저 본관 성씨만 부르기가 어색해서 외명부의 가장 낮은 품직을 참칭한 것은 사실이나 요즈음에 공무원이란 직업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라 이제는 그저 정형화된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는 중앙 정부에서 발령을 받는 조관(朝官)만을 올리며, 顯妣某封某氏라는 글귀에서 모 씨라 함은 ○본○관○성○씨를 말하며 모봉이라 함은 남편의 직위에따라 주어지는 부인의 품수 즉 외명부를 말함인데 예를 들면 “顯高祖考精國功臣通政大夫驪州牧使黃州牧使贈資憲大夫工曹判書府君神位. 顯高祖妣貞夫人星山裵氏神位”에서 貞夫人과 같음이다. 신주는 관직 지낸 것을 모두 쓰기 때문에 글귀가 긴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고 한다.

☞㉤ 지방을 “아버님 신위”“어머님 ○본○관○성○씨 신위”라 쓰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 하루에 두 분 이상이라도 기제는 당연히 따로 지내야 한다. 그러나 차례는 자기 집에서 기제를 모시는 조상은 모두 지내게 되는 것이라 한꺼번에 차리면 되는데 상을 차리는데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식구가 많은 경우라면 원칙대로 각 조상 내외분마다 따로따로 상을 차리고 지방도 내외분별로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같은 핵가족 제도하에서 아무리 명절이라고는 하지만 사대 봉사를 하게 되는 경우 한꺼번에 상을 네 벌이나 차려야 한다면 사후의 음식물 처리 등을 생각할 때 합리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상 예라는 것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중에 가장 큰 폐단의 하나가 매사를 정정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공연히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다. 서양인의 에티켓에 관한 책을 보면 모든 게 세부 사항까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그 외의 경우에는 보편타당성이 우선하는데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규격화되지 못하고 있어 (굳이 규격화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하는 이러한 의식까지 가가례로 치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세부 사항에 융통성을 부여한 것이라고도 설명 하고 있기는 하다. 물론 옛날에는 지방에 따라 마련할 수 있는 제물이 다를 수밖에 없었겠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분상승에 따라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지 않던 사람들도 다른 집에서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흉내를 내다보니 가가례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잘못된 것은 고치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체면상 우기다 보니 점점 더 어긋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무리하지 말고 내외분별로 따로따로 상을 마련해도 좋고 식구가 적거나 형편이 닿지 않으면 한꺼번에 젯상을 마련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라면 지방도 내외분별로 따로따로 써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한 곳에 써도 무방할 것이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지방을 쓸 때 상단 양모서리를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라 둥그스름하게 잘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편한 대로 하기로 하자.

☞㉦ 큰아들이면 효자(孝子), 작은아들이면 자(子), 큰손자면 효손(孝孫), 남편이면 부(夫)라고 쓰고 아내나 아랫사람이면 봉사라고 쓰지 않고 행사(行祀)라고 쓴다.

☞㉧ 요즈음은 추석 때 사용하는 지방을 모든 직계 조상을 대상으로 해서“선조 여러 어른 신위”라고 쓰기도 한다.

축문은 길이 36CM 정도, 폭 24CM 정도의 백지 위에 정자로 쓰며 특히 축문의 문구 중 維자, 顯자, 饗자는 각 문단의 처음 글자로 한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1962년 음력 11월8일(양력 12월 4일) 돌아가신 아버지를 예로 들어 1990년 기제사에는 축문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만세력이나 달력을 보면 음력과 양력, 절기와 월건(月健) 일진(日辰) 등을 알수 있는데 우선 만세력을 펴 1990년 음력 11월 8일을 찾는다.
• 유(維) : 굵은 줄. 도덕의 기초가 되는 것. 여기서는 이어져 내려온다는 뜻이다. 이제라고 해석해도 좋다.
• 세차(歲次) : 해의 차례라는 뜻으로 항상 그대로 쓴다.
• 간지(干支) : 天干〔육십갑자의 윗단위 즉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地支 [육십갑자의 아랫단위 즉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이니 그 해의 태세(太歲)를 말하는 것으로서 1990년은“경오년”이므로“庚午”라고 쓴다.
• 기월(幾月): 그 당한 달, 즉 제사가 든 달이 11월이므로“11월”이라고 쓰고
• 간지삭(干支朔) : 제사가 든 달의 초하루 일진을 쓴다. 11월 1일 일진이 병진이므로“丙辰朔”으로
• 기일(幾日) : 제삿날이 8일이므로“8일”이라고 쓴다.
• 간지(干支) : 제삿날의 일진을 그대로 쓴다. 8일 일진이 계해이니“癸亥”라고 쓴다.
• 이름 : 제사를 받드는 사람의 이름을 쓴다.
• 효(孝): 효는 부모를 잘 섬긴다는 뜻으로 큰 아들은“효자”,작은 아들은 “자”라고 씀.
• 감소고우(敢昭告于) : 감히 밝게 고한다는 뜻임. 아내는 敢을, 아들은 敢昭를 뺀다.
• 현(顯) : 경칭
• 추원(追遠) : 먼 옛일을 생각함. 조상의 미덕을 追思함.
• 호천망극(昊天罔極) : 하늘이 넓고 커서 끝이 없음과 같이 부모의 은혜는 넓고 커서 다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
• 근이 청작서수(謹以淸酌庶羞) :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서. 청작(淸酌) 은 제사에 쓰는 맑은 술. 서(庶)는 중(衆). 수(羞)는 맛이 좋은 음식
• 공신전헌(恭伸奠獻) : 조상의 제사에 공경을 다함

그러나 앞으로는 어려운 한자말보다는 아름다운 우리의 글로 고쳐서 축문을 쓰는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 축문을 우리글로 옮겨 보면 이러하다.

유세차 경오 11월 병진삭 8일 계해 효자 (이름) 감소고우
경오년 음력 11월 8일 아들 (이름)은 감히 고하나이다.

현고학생부군 세서천역 휘일부림
해가 바뀌어 아버님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추원감시 호천망극
은혜가 하늘처럼 크고 넓어 다할 수 없사오나

근이 청작서수 공신전헌 상 향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잔을 드리오니 흠향 하시옵소서.

양력으로 기제를 지내게 될 경우의 축문은 간지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1990년 양력 12월 4일 아들 (이름)...  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만약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이라면“顯考學生府君”대신에“顯妣孺人 本貫姓氏”(예: 杞溪 兪氏, 金海 金氏)

☞㉡ 양위분이 다 돌아가신 경우에는“顯考 學生府君 顯妣孺人 本貫姓氏 歲序遷易 顯考 (여기서 顯考는 아버지의 기일을 의미하는데 어머니의 기일에는 顯妣) 諱日復臨”

☞㉢ 조부모나 증조부, 고조부의 경우에는 위의 축문에서 지방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이 고치되 특히 유의할 점은 부모의 경우에 쓴“昊天罔極(호천망극)”대신에 "不勝永慕(불승영모)”를 쓰고“孝子(효자)는 “孝玄孫(효현손)·孝曾孫(효증손)·孝孫(효손)”등으로 바꾼다.

• 不勝永慕 :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 顯高祖考(曾祖考·祖考) 學生府君 顯高祖妣(曾祖妣·祖妣) 孺人本貫姓氏 歲序遷易 顯高祖考(曾祖考·祖考)(또는 顯考祖妣·曾祖妣·祖妣) 諱日復臨 追遠感時 不勝永慕

☞㉣ 남편의 경우는“顯考學生”대신에“顯辟學生”으로,“孝子”는“妻”로,“昊天罔極”대신에“不勝感愴”으로 바꾼다.

• 不勝感愴(불승감창) :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처의 경우는“顯考學生府君”대신에“亡室孺人(망실유인)本貫姓氏”로,“諱日復臨”을“亡日復至(망일부지)”로,“昊天罔極”을“不自勝感(부자승감)”으로 바꾼다.

• 亡日復至 : 죽은 날이 돌아와
• 不自勝感 : 스스로 많은 느낌을 이기지 못하여

☞㉥ 아내나 아랫사람이면 謹以(삼가) 대신에 玆以(이에)라고 쓰며, 恭伸奠獻(공경을 다해 받들어 올립니다) 대신에 伸此奠儀(신차전의:마음을 다해 상을 차린다)로 한다.

☞㉦“維歲次 庚午”를 사례편람에서처럼“維 年號畿年歲次”의 형식 즉“維 檀君紀元 四千三百二十三年歲次 庚午”라고 써도 된다.

4. 제수 만드는 방법

•육 탕(肉湯)
깨끗이 씻은 양지머리를 냄비에 넣고 물을 10컵 정도 붓는다. 무도 통째로 넣어서 은근한 불에 무가 부드럽게 익을 정도로 1시간가량 끓인다. 고기와 무를 건지고 국물은 기름을 깨끗이 걷어 낸다. 쇠고기와 무는 사방 3센티 크기에 1센티 두께로 큼직하게 썰어서 다시 냄비에 넣고 육수를 부은 다음 간을 맞춘다. 어슷썰기 한 파를 넣고 끓인 다음 탕기에 받아 낸다.
•소 탕(素湯)
두부를 1센티 두께로 썰어서 네모지게 잘라 놓는다. 다시마는 마른 헝겊으로 깨끗이 닦아서 냄비에 넣고 물 5컵을 부어서 끓이다가 다시마를 건지고 간을 맞춘다. 건진 다시마는 사방 3센티 정도로 썰어 놓는다. 다시마 국물에 두부를 넣고 끓으면 어슷썰기 한 파를 넣는다. 다시 국물이 끓으면 다시마를 위에 얹고, 한소끔 오르면 불에서 내린다.
•어 탕(魚湯)
조기 또는 민어는 비늘을 긁고 내장을 뺀 다음 깨끗이 씻어서 4센티 크기로 토막을 친다. 다시마는 마른 헝겊으로 깨끗이 닦아 냄비에 넣고 물 5컵을 부어 5분 정도 끓으면 다시마는 건지고 간을 맞춘 다음 조기를 넣고 끓인다. 10분 후에 어슷썰기 한 파를 넣는다. 건진 다시마를 사방 3센티 크기로 썰어 냄비에 넣고 한번만 끓으면 불을 끈다. 탕기에 조기와 국물을 담고 위에 다시마를 곁들인다.
•쇠고기적(육적)
쇠고기를 1센티 두께로 넓적하게 포를 떠서 잔 칼집을 앞뒤로 내 고기의 결을 끊어준 다음 부드럽게 만든다. 손질한 고기를 간장 설탕 파 깨소금 청주 참기름 등 갖은 양념에 1시간 정도 쟁였다가 석쇠에 굽는다.
•두부적(소적)
두부를 1센티 두께로 썰어 소금을 약간 뿌려 둔 뒤 약한 불에 지져낸다
•조기구이(어적)
조기는 비늘을 긁고 아가미와 내장을 떼어 낸 후 깨끗이 씻어 소금을 약간 뿌려 놓았다가 구워 낸다.
•동태전
비늘을 긁고 머리와 내장을 빼내고 껍질을 벗긴 다음 넓적하게 포를 떠서 소금을 조금 뿌려 놓는다.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힌 다음 지져 낸다.

5. 상 차리는 법

제수의 진설은 각 지방의 관습이나 풍속, 가문의 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 달라, 가가례(家家禮)라고도 하며, 극단적으로는‘남의 젯상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참견하지 말라’라는 풍자적인 비유까지 나오게 되었으나 국조오례의·주자가례·사례편람·가례즙람·격몽요결의 제찬도가 근본적으로는 가세의 형편에 따르되 제물의 많고 적음보다는 정성으로 지내야 한다는 것이 근본 취지일 것이다.

제례 등의 의식행사에서 말하는 동서남북은 지리학적인 방향과는 관계가 없다. 단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나 윗사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제일 윗자리가 되고, 이 방향이 북쪽이 된다. 따라서 신위를 모신 곳이 북쪽이 되고, 그 앞이 남쪽이 되며, 왼쪽이 동쪽 오른쪽이 서쪽이 된다.
동쪽은 양(+)이고, 서쪽은 음(-)이다. 따라서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에 자리하게 되므로 남동여서(男東女西)가 된다, 좌우의 개념으로 말하면 남자는 왼쪽에 자리하고 여자는 오른쪽에 자리하게 되기 때문에 남좌여우(男左女右)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동서남북과 좌우에 대한 개념의 차이점을 설명하면, 동서남북의 방위는 윗자리가 정해지면 자연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절대적이지만, 좌우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위에서 말한 남좌여우는 신위를 중심으로 좌우를 말하는 경우지만, 제수 음식을 차릴 때는 진설자의 위치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동서남북의 방위는 불변이지만 좌우는 뒤바뀌게 된다. 따라서 남좌여우의 좌우와 좌포우혜에서 말하는 좌우는 서로 다른 것이 된다. 만일 일정한 기준이 없이 좌우라고 할 때는 신위를 중심으로 해서 좌우를 말하는 것이다. 각 열의 순서는 신위에 가까운 쪽을 1열이라고 정한다.

제일 남쪽, 즉 5열에는 과실과 조과를 놓게 되는데 조율시이(棗栗柿梨)라하여 진설자의 왼편으로부터 대추·밤·감·배의 순서로 진설하고, 다음에 호두 혹은 넝쿨 과일을 놓고, 끝으로 조과류(다식·산자·약과)를 진설하는 법과,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색 과일을 동쪽(진설자의 우측), 흰색 과일을 서쪽(진설자의 좌측)에 놓고, 가운데 조과류를 진설하는 법 등이 있어 집안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어떤 원칙을 세워 보기 위해 예법에 관한 옛날 책 중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보다 더 상세하게 기술된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우리 구례 장씨 유사록에도 제물도에는 생률·홍시·대추·실백자가 명기되어 있으나 진설도에는 이 역시 “果 果 茶食 果 藥果 果 果”로 종류나 수량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었다. 각 진설도를 살펴 유추해 보면 유사록 7종, 율곡의 제의초 5종, 사례편람 4종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과일의 종류 내지는 접시의 수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례즙람”에 과실의 종류가 짝수이면서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데 (天産陽數地産陰數 : 고기나 생선은 천산 즉 陽산이기 때문에 같은 줄에서 양수인 홀수로 하고, 땅에서 나는 채소 과실은 지산 즉 陰산이기 때문에 같은 줄에서 음수인 짝수로 한다), 후세인들이 나름대로 주장한 것이기는 하나 격식을 규격화한다는 의미에서 가급적 따라 보도록 했다.

아울러 혼인례의 현구고례 (새 며느리가 시부모를 처음 뵙는 예) 때 올리는 폐백에서 시아버지에게는 대추와 밤을, 시어머니에게는 꿩이나 닭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때 시아버지에게 올리는 대추는 붉은 색으로 해 뜨는 동쪽을 의미해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함’을 의미하고, 밤(栗:西+木즉 서쪽 나무)은 서쪽 즉 어두움, 음(陰), 두려움(慄)을 의미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란 뜻으로 “아침 일찍부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공경해 모시겠습니다.”라는 의미이고, 시어머니에게는 원래 육포를 올렸는데 이 육포를 단수(腶脩)라고해서“한결같이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의미라고 하는데, 이것을 감안하여

밤을 제일 먼저 놓고(서쪽이므로) 그 다음 배(이 두 과일은 전부 깎아서 놓는데 白西의 의미도 포함) 다식 약과 ○○ 사과 감 대추(紅東의 의미)(○○는 짝수를 만들기 위한 과일로 호두 넝쿨 과일 귤 등을 말함)를 진설하도록 하고,

그 다음에는 포와 나물을 진설하는데, 좌포우혜(左脯右醯)라고 해서 포는 문어 전복 대구 북어 육포 등 마른 것을 쓰되 왼쪽, 혜는 원래 젓갈을 놓는 것이나 중부 지방에서는 고기식해가 없어져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식혜로 바뀌었다고 하니 혜(식혜)든 해(젓갈)든 관계없이 오른쪽에 놓고, 아울러 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에(乾左濕右:건좌습우), 생동숙서(生東熟西)라고 해서 날 것은 동쪽에 익힌 것은 서쪽에 놓는 법칙 등을 고려하여

포 숙채 간장 침채 젓갈(차례 때는 식해 즉 젓갈을 안 쓰고 식혜를 쓴다)을 진설하고(굳이 천산양수 지산음수에 충실할 필요는 없다}.

그 다음 열에는 율곡의 제의초의 영향을 받아 탕(단탕 삼탕 오탕)을 진설했었는데 다른 줄과 제기의 수가 균형이 맞지 않아 상의 차림새가 어색하고 이론적으로도 국물이 있는 음식이 국물이 없는 전 등의 음식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 늘 무언가 어색하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성균관에서 주장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다음과 같이 고쳤으니 이해하기 바란다.
즉 이 줄에는 육전 초장 적(구이:고기 닭 생선) 소금 어전을 놓는데 두동미서(頭東尾西) 어동육서(魚東肉西)를 고려하여

고기전을 왼편 어전을 오른편에 진설하고 그 가운데 적을 놓되 모두 머리가 동쪽으로 향하게 한다. 또 북어포와 같이 아래위가 있는 제수는 등이 위쪽 배가 아래쪽을 향하게 놓고 어전과 같은 경우는 등이 진설자 쪽으로 향하게 한다(이 역시 이론적인 근거는 없고 모양새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 같으나 사람마다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도해 별다른 의미는 없는 것으로 보이니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할 것이다).

적틀에는 맨 아래 어적, 가운데 육적, 그 위에 계적을 함께 쌓아 놓기도 하고, 초헌에 육적, 아헌에 어적, 종헌에 계적(닭)을 차례로 올리기도 하는 등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기제를 지낼 때처럼 삼헌을 하는 경우에는 차례로 올리고 차례를 지낼 때는 무축단작이니 한꺼번에 쌓아 놓으면 된다. 요리 연구가들은 닭을 놓을 경우 진설하기가 쉬어서인지 배가 반듯하게 하늘을 향하게 하고 다리는 얌전하게 묶어 왼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또 예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죄송스러워서인지 등이 하늘을 향하게 엎어놓는 것이 옳다고 주장들 하나 이론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적은 닭고기 생선으로 만든 3적 대신에 화양적을 쓰기도 한다. 다만 화양적을 쓸 경우는 경험상 일곱 꼬챙이를 만들어 초헌 때 세 개, 아헌 때 두 개, 종헌 때 두 개를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행히 육적 어적 계적 세 종류가 다 마련되어 있으면 초헌에는 육적, 아헌에는 어적 종헌에는 계적을 올리면 될 것이나, 육적이나 어적만 구비되어 있다면 처음부터 준비된 것만 진설하고 지내도 될 것이다. 여기서 적이라 함은 불에 굽거나 찐 것을 말하며, 전이란 기름에 튀긴 것을 말한다.

그다음 열에는 국수 육탕 소탕 어탕 꿀떡을 놓는다. 원래 가루음식의 대표인 국수와 떡은 신위수대로 차리는 것이 원칙이나 한 젯상에 한 그릇씩만 올리도록 하자. 옛날과는 달라 제수 음식의 뒤처리 등을 고려하면 구태여 국수를 꼭 놓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탕은 종래의 예법 책이 육탕·소탕·어탕으로 홀수의 제기를 놓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천산양수 지산음수의 규칙을 억지로 적용하려고 “탕은 고기 생선이 재료이며 한 줄에 놓기 때문에 홀수로 한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북쪽 끝(제1열)에는 대부분의 경우 잔서접동(盞西楪東)·시접거중(匙楪居中)에 따라 고위의 반·갱·잔반·시접·비위의 잔반·초접·반·갱을 진설하고 있는데 예법책들이 원칙에만 충실하려고 하다 보니 초접의 위치가 애매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배치하려면 고위의 반·갱·잔반 다음에 초접·시접·초접 또는 시접·초접을 놓고 비위의 잔반·반·갱을 놓는 것이 원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초접의 쓰임새가 거의 없을 것임을 감안하면 초접을 굳이 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앞으로는

고위의 반(밥그릇) ·갱(국그릇)·잔반·시접·(초접)·비위의 잔반·반·갱의 순서로 놓도록 하자. 반 갱 국수 떡은 신위수대로 놓는 것이라 양수 음수의 규칙에 적용되지 않는다. 또 太師張公實記에는 촛대가 맨 앞줄에 놓여 있으나 젯상의 모양이나 여유에 따라 어울리게 하면 될 것이다.


    예 1. 紅東白西 (홍동백서)



※ 예 2에서 제2열은 국수 육탕 소탕 어탕 꿀 떡 제3열은 육전 적 어전 제4열은 북어포 숙채(3가지) 간장 침채를 진설해도 된다. 또 부접불기(附楪不記)라해서 조미료 그릇은 계산하지 않는다. ( ) 안에 있는 제물은 생략해도 좋다. 제5열은 조과를 한 그릇에 놓고 과일은 대추·밤·감을 포함해 5종류를 놓든가 또는 밤 배 산자 약과 (과일) 사과 감대추를 놓으면 지산음수에도 맞으니 적당하리라 생각한다.

☞ 두 분을 모실 때는 메·갱·잔반만 추가된다.
☞ 예 1은 홍동백서 진설법으로 가례즙람에 따라 “天産陽數 地産陰數”의 규칙을 고려한 것으로 예 2처럼 조율시이 진설법에 따라 대추 밤 감 배 사과 산자 약과를 진설해도 된다. 대추 밤 감 또는 곶감을 우리나라의 기본 삼과라고 한다. 조과는 유과의 대표격인 산자와 유밀과의 대표 격인 약과를 말한다.
☞ 신위를 중심으로 해서 볼 때 반(메)는 오른편, 갱(국)은 왼편, 면(국수)는 오른편, 편(떡)은 왼편에 진설한다.

상중에는 신위 오른편이 갱이었으나 우제 이후에는 신(神)의 도에서 오른편이 윗자리임을 감안 우반좌갱(右飯左羹)으로 진설하는 것이다. (상차리는 법을 설명할 때 모든 경우 진설자의 위치에서 설명했으나 이 경우는 神의 道를 아울러 설명하기 위해 신위(神位) 중심으로 설명했으니 착오 없기를 바란다).

☞ 편틀에는 시루떡(설기는 안하고 백편으로)을 올리되 다섯 켜 내지는 일곱 켜로 하고 그 위에는 우끼떡으로 모양을 내고 대추를 세 조각으로 해서 올려놓기도 한다.
☞ 보통 소탕은 두부전으로 어탕은 생선이나 북어로 마련한다.
☞ 포는 흔히 명태를, 나물은 익힌 채소 음식으로 세 가지 색깔의 나물을 한 그릇에 준비하면 된다.
☞ 탕이고 혜고 모두 국물은 말고 건더기만 올린다.
☞ 제수를 장만할 때는 고춧가루 마늘과 “치”자로 끝나는 생선, 복숭아는 쓰지 않는다. 파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 모사 그릇에는 쌀 또는 모래(땅을 의미함)를 넣고, 짚이나 솔잎을 빨간 실로 묶어 꽂는데 이는 위에 있는 조상 신으로 하여금 여기에 오십사 하는 의미이다.
☞ 병풍은 요란한 것이 아닌 글 등이 적힌 것이 좋겠다.
☞ 적은 제의 음식 중에서 중심이 되는 음식으로 3가지를 마련해 원칙적으로 술을 올릴 때마다 바꾸어 올린다.
☞ 어적은 입과 꼬리 끝을 잘라 내고 칼집을 내어 소금 간장으로 양념해 굽는데 머리가 동쪽으로, 배가 신위 쪽으로 가게 담는다.
☞ 해(醢)는 생선젓으로 대개 소금에 절인 조기젓 2-3마리를 쓰는데 차례 때는 쓰지 않는다.
☞ 혜(醯)는 식혜 건더기를 담고 잣을 몇 개 박기도 한다. 기일제에는 쓰지 않는다.
☞ 제수(祭羞)는 자손이 먼저 먹어서는 안 된다[격몽요결의 時祭儀(시제의)에 未祭之前(미제지전)엔 勿令人先(물령인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젯상에 올릴 만큼 따로 담아 놓고 남는 것을 먹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 밤은 껍질을 벗기고 기타의 과실은 괴기 편하게 아래와 위를 도려낸다.
☞ 배 사과 같은 과일은 꼭지가 위로 가게 괸다.

• 팥은 붉은색이라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 제수용으로는 반듯이 백설기를 사용한다고들 주장하는데 동국세시기 정월 원일에 보면“餔粳米粉於甑中(포갱미분어증중) 以熟赤豆隔鋪之(이숙적두격포지) 隔粉多積(격분다적) 視甑大小(시증대소) 或用糯米粉隔蒸之(혹용나미분격증지) 名曰甑餅(명왈증병) 以歲時禱神(이세시도신) 又於朔望及無時禱神(우어삭망급무시도신) 亦如之(역여지)”즉 멥쌀가루와 삶은 팥을 각각 층으로 겹겹으로 깔되 쌀가루를 더 두툼하게 까는데, 시루의 크고 작음에 따라 혹은 찹쌀가루를 몇 겹 더 깔아서 찌기도 한다. 이것을 시루떡(甑餅)이라 한다. 이것으로 새해 제사에 쓰기도 하고 또 삭망전이나 그밖에 아무 때에라도 신에게 빌 때는 이것을 올리고 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격몽요결 참례의에 보면 시제에 팥죽을 올린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백편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은 근거가 희박하다 하겠다.

6. 제사 드리는 법

(1) 준 비

① 변복취위(變服就位)
모든 자손이 성복 (깨끗하고 검소하며 야하지 않은 색 계통의)하고 정한 위치에 서는데, 제주는 중앙에 서고, 여자는 서쪽 남자는 동쪽에 자리한다.

② 기구진설
대청이나 정침의 (북쪽) 벽 한가운데에 병풍을 두르고, 교의를 설치한다. 교의 앞에 젯상을 놓고, 젯상 앞에 향안을 놓고, 향안 위에는 축문 향로(서쪽) 향합(동쪽)을 순서대로 놓고 그 앞에는 띠 묶음을 꽂은 모사 그릇을 놓는다. 향안 우측에는 주가를 놓고, 그 위에는 퇴주기 술주전자(또는 술병) 현주병(정화수)을 놓는다. 좌측에는 신주가 있을 경우 대기하는 신위와 강신 잔반을 놓는다. 유지나 백지를 젯상 위에 깔고(깨끗하면 깔 필요가 없다) 집사가 촛불을 밝힌다. 요즈음 의식으로 간주해 어둡지 않아도 촛불을 밝힌다. 제기는 따로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③ 설소과주찬
젯상 차릴 때의 동서남북은 자연의 동서남북이 아니고, 神位(신위)를 모신 상좌를 북”쪽으로 간주해 설정한 예절의 방위이다.
실과는 남쪽 끝에 놓도록 하는데 대추·밤·감의 기본 과실에 호두·배·덩굴 과실·조과 (다식·전과·약과)등을 놓되 과실은 최소한 네 가지를 준비하도록 하고, 많아도 여섯 가지는 넘지 않도록 하자. 율곡선생의 제의초에는 홀수로 차려져 있고 사계선생의 가례즙람이나 도암선생의 사례편람에는 짝수로 차려져 있는데 어느 방법을 택하든 이유를 알고 있으면 된다. 여기서는 유일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가례즙람을 참고했다.
나물과 포혜는 그 다음 줄에 차리되 서로 사이를 둔다. 나물은 고사리·도라지·숙주 또는 무나물 등을 쓴다, 숙채는 익힌 나물 2-3가지, 심채는 김치를 놓는데 이때의 김치란 제사 지내기 하루 전 즈음에 담근 백김치를 말하며 건더기만 놓는다. 포는 문어 전복 대구 북어 육포 등 마른 것을 쓴다. 혜는 원래 젓갈을 놓는 것이나 중부 지방에서는 고기 식해가 없어져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식혜로 바뀌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는 혜와 해가 구별 없이 쓰일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혜를 놓게 되더라도 국물은 말고 건더기만 올리는데 맨 위에 대추를 세 조각 올려놓아 모양을 내기도 한다. 아직도 영남지방에서는 해를 쓰기도 한다고 한다. (국립 박물관에 소금에 절인 조기 세 마리가 해(醢)의 의미로 진설된 상이 전시되어 있다)
탕은 고기탕 채소(두부)탕 생선탕 등 3탕을 쓰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단탕을 올리기도 하며 반듯이 홀수로 쓴다.
적은 채소(두부) 고기 생선으로 만든 3적대신 화양적을 쓰기도 한다. 적이라 함은 불에 굽거나 찐 것을 말하며, 전이란 기름에 튀긴 것을 말한다.
제수를 장만할 때는 고춧가루, 마늘,“치”자로 끝나는 생선과 복숭아는 쓰지 않는다. 또한 물고기는 머리가 동쪽(즉 진설자의 오른쪽)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하되 배가 신위 쪽을 향하게 하고(혹자는 반대로 주장하나 내가 과문한 탓인지 이런 것에 관한 근거 문헌을 찾지 못했다) 머리는 자르지 않는 법이다.

④ 신위봉안(출주)
원래 기제는 돌아가신 날의 궐명(厥明:다음날 날이 밝아 올 때)에 시작해서 질명(質明: 날이 밝기 전 어두운 새벽녘)에 끝내는 것이라 가묘에 신주가 계시면 이른 새벽에 제주 이하 모두 복장을 갖추고 사당에 나아가 분향하고 사유를 고한 뒤 신주를 받들고 나와 교의에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나, 요즈음은 종가처럼 사당이 있어 신주를 별도로 모시고 있는 집도 거의 없고 생활 여건의 변화로 돌아가신 날의 초저녁에 지내는 가정이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서 기구를 진설하고 젯상을 차리면서 동시에 지방이나 존영을 모시도록 하는 것이 가할까 한다. 존영을 위패나 지방과 동시에 놓게 될 경우에는 당연히 위패나 지방이 중심이 되어야하므로 위패나 지방을 중앙에 모시고 고위의 존영은 위패의 서쪽 비위의 존영은 위패의 동쪽에 모셔야 할 것이다.

※격몽요결 시제의에 “厥明(行祭之日)에 鷄鳴而起하여”한 것으로 보아 첫 닭이 울 무렵이 궐명이고 한참 후 동이 틀 무렵을 질명이라고 함.

※사람에 따라 돌아가신 전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엄숙하게 지내야 하는 것이 제사라 새날이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먼저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첫 새벽이 되는 시간, 즉 자시(子時)에 지내기 위해서, 그 전 날부터 제수를 준비하고 상을 차려, 한밤중(중자시, 지금의 밤 12시가 지난 시각)에 지내게 되는 것을 보고 시계가 없던 시절에 생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2) 제사

① 강신분향
신위께서 강림하시어 음식을 드시라는 청을 한다는 뜻이다.

⋄제주가 신위를 모셔 오는 뜻으로 문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문을 조금 열어 놓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제주이하 참사자 모두가 차례로 서되 제주가 중앙에, 여자는 서쪽 남자는 동쪽에 선다.
⋄제주가 신위 앞에 읍하고 꿇어앉아 분향(위에 계신 분을 모시고자 함이다)하는데
⋄왼손으로 향로 뚜껑을 열어 향로 남쪽에 오른손으로 향합 뚜껑을 열어 향합 남쪽에 놓는다. 오른손으로 향을 집어 향로에 넣어 태우기를 3번하고, 왼손으로 향로 뚜껑을, 오른손으로 향합 뚜껑을 덮는다. 이때 향을 집어 이마 가까이에 대고 기도하는 듯 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몇 번 분향하라는 기록은 없으나 가루로 된 향이면 세 번쯤 분향하고, 그렇지 않으면 세 개 정도를 피우면 될 것이다.
제주는 일어나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읍하고 두 번 절한다.

② 강신뇌주
⋄좌집사가 소탁 위의 강신 잔반을 들고 제주의 왼쪽 조금 앞에서 동쪽을 향해 서고 우집사(자질이 한다)가 주전자를 들고 오른쪽 조금 앞에서 서쪽을 향해 선다. 子姪=아들이나 조카를 일컬음
⋄제주는 읍하고 제주와 두 집사가 꿇어앉는다.
⋄좌집사가 강신 잔반을 제주에게 주면 우집사가 술을 잔에 차지 않게 조금 붓고
⋄제주는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모사 그릇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세 번에 나누어 모두 기울여 붓는다. (이를 三除于地라고 하는데 아래에 계신 신을 모시고자 함이며, 차례 때는 이와는 달리 가운데서 한 번에 기울여 붓는다)
⋄빈 잔을 좌집사에게 다시 주고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두 번 절한다. (각 집사는 잔과 주전자를 제자리에 놓는다.)
※이런 모든 절차가 집사가 없으면 제주 혼자서 해도 무방하다.

③ 참 신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가 2번 절한다. 부녀자는 4배가 정식이나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볼 때 2번도 좋을 듯 싶다. 신주(神柱)일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하고 지방일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 고례에 신주일 경우 先參神后降神이라고 했는데 상례에서 신주에 글씨를 쓸(題主) 때‘尊靈 舍舊從新 是憑是依’(존경하는 혼령이시여 옛 것을 버리시고 새 것을 따라 여기에 기대시고 의지하소서)라는 것은 신주에 신이 머무르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여기서 참신이라는 것은 신주 그 자체를 뵙는 禮이고 강신은 신주에 깃들여 있거나 주위에 있으실지도 모르는 신께 인사드리는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지방은 임시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선 신이 깃드시라고 강신을 먼저하고 깃드신 신을 뵙는 참신을 나중에 하는 것일 게라고 생각된다.

④ 진 찬
시제 등을 지낼 때는 강신한 후에 진찬을 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주인이 앞으로 나아가면 주부가 그 뒤를 따른다. 집사 한 사람은 반에다 고기와 생선, 한 사람은 편과 면, 또 한 사람은 반과 갱을 들고 따른다.
주인은 天産인 고기와 생선과 갱을, 주부는 地産인 편과 면과 반을 받들어서 제자리에 놓는다. 이때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에 놓되 머리는 동쪽으로 향하게 한다.
진찬을 마치면 모두 제자리에 돌아와 선다. 일반적으로 사시제 같이 신위가 여럿인 경우는 음식이 식는 것 등을 걱정해서 진찬을 정식으로 하는 것이 좋겠고 기제나 차례와 같은 경우는 진찬을 따로 하지 말고 미리 상을 마련한뒤 의식을 시작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⑤ 초 헌
처음 잔을 올리고 재배하는 것으로 전주 좨주 전적 계반개의 순서를 따르는데

전주(奠酒)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읍하고, 젯상의 서쪽으로 가서 고위 잔반을 집어 두 손으로 받들고 향안 앞 서쪽에서 동향해 서고
⋄우집사가 주가 앞으로 가서 주전자를 들고 향안 앞 동쪽에서 서향해 선다.
⋄우집사는 제주가 받들고 서 있는 고위의 잔에 술을 가득 붓는다.
⋄제주는 젯상의 서쪽으로 가서 고위의 잔반을 원 자리에 놓는다.
⋄제주는 젯상의 동쪽으로 가서 비위 잔반을 받들어 향안 앞 서쪽에서 동향해 선다.
⋄우집사는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주전자를 제자리에 놓고 물러난다.
⋄제주는 젯상의 동쪽으로 가서 비위의 잔반을 원래의 자리에 놓고
⋄제주는 제자리에 와서 선다.

좨주(祭酒)
⋄좌집사는 고위의 잔반을, 우집사는 비위의 잔반을 받들어 제주의 좌우에서 제주를 바라보고 선다.
⋄제주와 두 집사가 꿇어앉는다.
⋄좌집사가 고위 잔반을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왼손으로 잔대를, 바른손으로 잔을 잡아 모사에 조금씩 세 번 기울여 붓고(이 때는 다 붓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붓는다) 잔대에 흘린 술은 퇴주 그릇에 쏟은 다음 잔반을 좌집사에게 주고, 비위 잔반도 같이하면 (이때 잔을 향로 위에서 돌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양집사는 일어나서 잔반을 원래의 자리에 올리고 물러난다.

전적(奠炙)
⋄제주가 일어나면
⋄양집사는 서로 협조해 육적을 올리고 (이어 적소금을 올린 후) 물러난다.

계반개(啓飯蓋)
⋄좌집사는 고위의 반·갱(보통은 갱의 경우 뚜껑이 없다)과 면의 뚜껑을 열어 각 그릇의 남쪽에 놓고, 우집사는 비위의 것을 그렇게 한다.
⋄이어 양집사는 탕의 뚜껑을 열어 빈자리에 놓는다.

독축(讀祝)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가 무릎을 꿇고 부복하면 축관은 주인 왼편에 서서 동쪽을 향해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읽기가 끝나면 축판을 소탁 위의 강신 잔반 서쪽에 놓고 잠시 후 모두 일어나며 독축자는 제자리로 가고 제주는 두 번 절한다.

퇴주(退酒)
다음 제주가 퇴주기를 두 손으로 들고 북향해 서면 좌우집사는 각각 젯상의 잔반을 집어 퇴주 그릇에 비우고 원래의 자리에 다시 놓는다. 제주는 퇴주 그릇을 제자리에 놓고

철적(撤炙)
집사들은 육적을 물려 대상(제수를 젯상에 놓기 전이나 후에 임시로 이용하는 상)에 놓은 후 모두 제자리로 물러난다.

⑥ 아 헌
두 번째 잔을 올리는 것으로 주부가 한다. 의식은 초헌과 같이하되 계반개 및 독축 절차는 없다. 주부가 올리는 것이 예의지만 올리기 어려운 때는 제주의 다음가는 근친자나 장손이 한다. 주부는 전을 올린 후 4배가 항식이나 재배해도 좋을 것 같다. 헌자가 주부면 집사도 여자이어야 한다. 전적에는 어적을 올린다.

⑦ 종 헌
마지막 올리는 잔으로 아헌자 다음의 근친자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사람이 올리는데 초헌과 같은 방법으로 하고 계적을 올린 후 재배한다. 다만 이때는 술과 고기를 걷지 않는다. 집안에 따라서는 저를 고르고 여기저기 제물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저범을 가지런히 고르려는 것처럼 상위에 저범을 세웠다가 드는 행위를 세 번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결국 저범과 상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⑧ 유 식
조상에게 많이 잡수시기를 권하는 절차로 종래에는 초헌자 혼자서만 다시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 의식을 집행했으나 부부가 평등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부부가 함께 나아가 예를 표한 후

첨작(添酌)
제주는 우집사가 다른 술잔에 술을 조금 부어 주면(주전자로 해도 된다) 이것을 받아 종헌자가 드릴 때 좨주로 인해 채워지지 않은 잔에 세 번으로 나누어 채우고

삽시정저(揷匙正箸)
주부는 젯상의 왼쪽에서 고비의 순서로 숟가락 앞이 동쪽을 향하게 하여 메의 가운데 꽂고 젓가락은 가지런히 골라 손잡이가 서쪽으로 가게끔 시접 가운데 걸쳐 놓는다. 이어 제주와 주부는 재배한다.

⑨ 합 문
참사자 일동이 방에서 나와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하는바 경우에 따라 제자리에 조용히 서 있다가
☞ 원래 합문이란 밥을 9번 떠먹을 정도의 시간을 의미한다.

⑩ 계 문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하는데 제주가 기침을 세 번하고 들어간다.

⑪ 진숙수
시중의 거의 모든 예법 책이 헌차, 진다 또는 헌다라고 해서 숭늉을 국과 바꾸어 올린 후 메를 조금씩 세 번 떠서 말아 놓고(삼초반이라 함), 참사자 일동이 2-3분 간 읍하고 있다가 제주가 큰기침을 하면 고개를 든다. 이때 숟가락은 반듯이 숭늉그릇에 담기어져 있어야 하고 젓가락은 전 등에 올려놓는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메를 말아 놓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또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차를 올리는 법이 없는 점으로 보아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하도록 하자. 즉 제주와 주부는 향안 앞에 나아가 읍하고, 제주는 남자 집사의 도움을 받아 갱의 덮개를 덮어 물리고 주부는 여자 집사의 도움을 받아 숙수(숭늉을 의미하기 위해 정화수에 밥알을 조금 풀어 놓기도 한다)를 올린다.

⑫ 철시복반
주부는 젯상의 서쪽으로 가서 고위의 메에서 숟가락을 뽑아 시접에 담고 젓가락도 내려 시접에 담는다. 이어 비위도 같이한다. 이때 종래와 같이 시저로 구르거나 밥을 말아 놓거나 젓가락을 여기저기 제수 위에 올려놓거나 하는 짓은 하지 말자. 집사는 메그릇 등의 뚜껑을 덮는다.

⑬ 사 신
참사자 일동이 재배하고 신주나 존영은 따로 모시고 지방과 축문은 불살라(분축焚祝이라 함) 향로에 담는다(숭늉 그릇에 넣는 것을 보아 왔으나 비합리적이다).

⑭ 철 상
모든 제수를 뒤에서부터 물린다.

⑮ 음 복
조상께서 물려주시는 복된 음식이라는 뜻으로 참사자와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 이웃 어른을 모셔다가 대접하기도 하고 나누어주기도 한다.
초헌 아헌 종헌 시에 잔을 모사에 세 번 기울여 붓는 의식은 잔을 받아 시계 방향으로 두 번 반 돌린 후 좌집사에게 주어 올리는 사람도 있고 그냥 향불 위를 스쳐서 올리는 사람도 있는데 이때는 첨작이 생략된다고들 하나 모두 근거가 없으니 믿을 말이 못된다. 기제사 상이나 차례 상의 차림은 거의 같다. 원단(설날)차례 때에는 시식인 떡국이 오르고, 추석 차례 때에는 메와 송편을 함께 올린다. 다만 차례 상에서도 원래는 축문을 읽었으나 언제부터인지 축문이 없어지고 무축 단작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으며 술은 한 잔만 올린다.
또 기제사는 돌아가시기 전날 자정에 지내는 집안이 있으나 이는 법도에 벗어난다고 생각되니 임종하신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그냥 돌아가신 날 오후에 모여 제수를 준비하기 시작해서 해가 진 뒤 어두워지면 적당한 시간에 지내도록 하면 되겠으나 반듯이 11시(23시부터 01시는 그 다음 날 자시에 속한다) 이전에 지내도록 하고 그 외에는 아침 일찍 올리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1년(1660) 庚子 5월4일 戊午/去夜二更, 題練主如儀訖題主官工曹判書吳竣。】上出就齋殿易服, 百官亦就位易服, 四更, 上親行練祭 上將復親行端午節祭諸大臣恐上連日冒雨, 勞動行禮, 有致傷之患, 詣賓廳, 三啓請攝行上不從政院藥房, 復三啓以請, 上乃許之
어제 밤 2경(21시~23시)에 연주를 의식대로 쓰고....4경(01시~03시)에 상이 친히 연제를 행하였다 라는 글도 있다.]

끝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혈연간의 돈독한 유대와 한 집안의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와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혹 처가가 불우하여 봉사할 손이 없다던가 하다면 장인 장모에 대해서는 내 부모와 조금도 다름없이 지내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까 한다. (이를 외손봉사라 한다).

집에서 지내는 차례.
① 강신분향
제주는 꿇어앉아 분향하고 재배한다.
② 강신뇌주
좌집사가 강신 잔반을 제주에게 주면, 우집사는 술을 잔에 차지 않게 조금 부어 준다. 제주는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모사 그릇 중앙에서 한 번에 기울여 붓는다. 빈 잔을 좌집사에게 다시 주고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두 번 절한다. 집사는 잔을 제자리에 놓는다.
③ 참 신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가 두 번 절한다.
④ 헌 주
주전자를 들고 윗대 고위와 비위의 잔반부터 아랫대까지 직접 젯상 위의 잔반에 차례대로 모두 술을 가득 따르고 재배한다. 만약 축문을 읽을 것 같으면 읽은 후 주인이 재배한다.
⑤ 계반삽시
주부나 집사가 윗대 조상부터 차례대로 떡국 그릇의 뚜껑을 열고, 이어 시접에 담겨 있는 숟가락을 떡국에 꽂고 젓가락은 손잡이가 왼쪽에 놓이도록 시접 위에 걸치고 재배한다.
⑥ 시 립(侍立)
참사자 일동이 7-8분 동안 조용히 서 있는다 (엎드려 있어도 된다). 정초에는 떡국을 올리게 되므로 진숙수하는 절차가 없다. 그러나 추석 등에는 메를 올리게 되므로 진숙수 한다.
⑦ 철시복반(落匙箸낙시저)
숟가락과 젓가락을 거두어 시접에 담근 후 떡국이나 메 그릇에 뚜껑을 덮는다.
⑧ 사 신
참사자 일동이 재배하고 신위나 존영은 제자리에 모시고, 지방은 불사른다.
⑨ 철상.
⑩ 음복.

묘지에서 지내는 차례
☞ 지방을 쓸 필요가 없다. 축을 읽으려면 집에서 써 온다.
☞ 메와 갱을 차리지 않으므로 그 자리는 비운다. 따라서 진숙수하는 절차도 없다.
☞ 따라서 숟가락은 필요 없고 시접에 젓가락만 담는다.
☞ 뇌주(酹酒)는 땅바닥에 직접 한다.
☞ 떡은 화전 등을 쓴다.
☞ 성묘와 차례의 순서는 원칙적으로는 윗대의 조상부터 지내야 하겠으나 구태여 고집할 필요는 없고 그 날로 다 지내지 못하면 다음 날 지내도 무방하다. 차례를 집에서 지낼 때는 아침 해 뜨는 시간이고, 묘지에서 지낼 때는 그 날 중 에 지내면 된다.

① 쇄소봉영(灑掃封瑩)
묘지봉분과 제단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② 설소과주찬(設蔬果酒饌)
기제와 같으나 메와 갱을 차리지 않으므로 그 자리는 비운다. 따라서 시접에 젓가락만 담는다. 한식에는 화전이나 쑥떡을 쓰고 추석에는 송편을 쓴다. 또 식해(생선젓)대신 식혜 건더기를 쓰며 3적은 한꺼번에 올린다.
③ 강신분향
기제와 같다. 묘제는 강신을 먼저 한다.
④ 강신뇌주
기제와 같으나 집에서처럼 모사에 하지 않고 향안 앞 땅바닥에 직접 한다.
⑤ 참 신
기제와 같다.
⑥ 헌 주
제주가 주전자를 들고 잔반에 술을 가득 따른다.
⑦ 정 저
주부가 향안 앞에 나아가 몸을 굽혀 예를 표하고 젓가락을 시접에 걸치고 절한다.
⑧ 시 립
설날 차례와 같다.
⑨ 낙 저
주부가 몸을 굽혀 예를 표하고 젓가락을 내려 시접에 담는다.
⑩ 사신, 분축, 철찬, 음복, 철기구
설날 차례와 같다.

다시 한번 제사 지내는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정의례 준칙
참고로 가정의례 준칙에 대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제례의 구분
기제, 정월 초하루의 연시제와 추석절의 절사(茶禮)및 한식 성묘를 지낸다.
• 봉사의 대상
기제 : 제주로부터 2대조, 절사·연시제 : 직계 조상
• 제사 때와 장소
기제 : 돌아가신 날 해진 뒤,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
차례 : 아침에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
참사자 범위: 직계 자손

• 제사의 절차
① 신위 봉안
젯상 위에 흰 종이를 깔고 제수를 진설한 뒤, 지방이나 영정을 모신다. 제주가 분향하고, 모사에 술을 부은 뒤 제
주와 참사자가 일제히 신위 앞에 두 번 절한다.
② 초 헌
고인에게 처음 술잔을 올리는 절차이다. 술잔을 채워 두 손으로 받들고 향불 위를 거쳐 밥그릇과 국그릇 사이 앞쪽에 놓는다. 집사가 없이 제주 혼자서 해도 무관하다. 잔을 올린 뒤 두 번 절한다.
③ 독 축
초헌이 끝나면 제주는 축문을 읽고 두 번 절한다. 축문을 읽는 동안 다른 참사자들은 모두 꿇어앉아 머리를 약간
숙이고 경건한 마음으로 듣는다.
④ 아 헌
축문 읽기가 끝나면 주부가 두 번째 술잔을 올리고, 네 번 절한다.
⑤ 종 헌
제주의 근친자가 세 번째 술잔을 올리고 두 번 절한다.
⑥ 삽 시
제수를 많이 드시라고 비는 의미로 숟가락을 밥에 꽂고 모든 참사자가 고개를 숙여 묵념한다.
⑦ 헌 다
숭늉 혹은 냉수를 국과 바꾸어 놓고, 수저로 밥을 조금씩 세 번 떠서 물에 만 다음 수저를 물그릇에 가지런히 놓고 잠시 읍하고 있다가 일어난다.
⑧ 사 신
참사자 일동이 일제히 신위 앞에 큰절을 올린다. 안녕히 가시라는 작별의 인사이다.
⑨ 철 상
지방을 거두어 축문과 함께 불사르고, 상을 물린다.
⑩ 음 복
참사자들이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음복을 함으로써 조상님들의 복을 받는다는 속신이 있다.

☞전통식의 지방을 접는 법


길이 2자(약 60CM) 너비 2자6치(약 78CM)의 백지를 12칸으로 접어 오른편에서부터 각 면에 1-12까지 번호를 가정해놓는다.
그림에서 1면을 왼쪽으로 접어 2면과 맞닿게 하고, 다시 그대로 왼쪽으로 접어 1면의 뒤와 3면의 앞이 맞닿게 한다.(2면의 뒷부분과 4-12면이 보이게 됨). 다음 4면과 5면이 맞닿게끔 오른쪽으로 접고 다시 6면 이하가 보이게끔 왼쪽으로 접는다. 다음 7면 이하를 뒤로 접으면 6면 만 전면이 보이고 2, 9, 10, 11, 12면은 뒷면이 보이는 상태로 된다. 7-12면이 전면으로 보이도록 그대로 뒤집어 놓고, 위아래의 점선을 앞으로 접으면 7면 이하의 전면이 그대로 보이는 상태가 된다.
9면 이하를 앞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접으면 9-12면의 뒷면이 보이게 된다. 그 상태에서 11면 이하를 뒤로 감싸며 접은 후 12면을 갈라진 안으로 끼워 넣으면 그림의 완성도와 같이 된다.

① 가묘(家廟)
돌아가신 조상을 상징하는 표상의 필요성으로 위패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을 모시는 장소를 옛날에는 그림으로 그려서 모셨기 때문에 영당(影堂)이라 했고 나중에는 조상의 칭호를 글씨로 쓴 신주를 만들어 모시게 되어 가묘 즉 사당(祠堂)이라고 하게 되었다. 가묘를 따로 지을 때는 원칙적으로 살림집의 동북쪽에 짓는다. 웃어른을 모시는 곳이라 해 뜨는 동쪽과 자기보다 윗자리인 북쪽에 짓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지었든 간에 집의 뒤를 북쪽으로 간주하는 예절의 방위를 적용하면 된다.

② 지방(紙榜)
항상 받들어 모시는 위패가 없어서 조상을 모실 때 종이에 신주와 똑같은 내용으로 써서 모시는 임시로 만든 위패. 위패는 신주 하나에 한 분만 쓰고 또 한 번 글씨를 쓰면 오래 모실 뿐 아니라 항상 가묘에 모시기 때문에 신주(神主)라고 쓰고, 지방은 하나의 지방에 고위와 비위를 한꺼번에 쓰고 임시로 쓰는 위패이기 때 문에 신위神位)라고 쓴다.

③ 위패를 모시는 차례

조상의 위패(신주)를 사당이나 감실(형편이 안 되어 따로 사당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위패를 넣어 두는 상자로 대청에 시렁을 만들어 두거나 하는데 현대에는 장식장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에 모시는 차례는 소목지서(昭穆之序)와 이서위상(以西爲上)의 두 가지가 있는데, 소목지서란 시조 선조 또는 부조 지위인 현조와 고조까지의 4대를 모시는 경우로서 왼쪽 줄을 소(동쪽을 의미) 오른쪽 줄을 목(서쪽을 의미)이라고 하는데 제일 웃어른(1세)을 가장 상석인 가운데에 모시고 2·4·6세를 소에 3·5·7세를 목에 모신다(즉 소에 2위인 고조, 목에 3위인 증조, 다시 소에 4위인 조부, 목에 5위인 부모). 이서위상이란 고조까지 4대만 모시는 경우인데 死者以西爲上이라고해서 죽은 이는 어두운 세상으로 갔기 때문에 해가 지는 서쪽을 높은 자리로 해서 서쪽으로부터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순서로 모시게 되는 것을 말한다.

④ 위패를 모시는 법
고와 비의 위패는 따로 이지만 한 독에 모시는데 고위는 서쪽에 비위는 동쪽에 모신다.

⑤ 위패의 구조
• 신주(神主) : 밤나무로 만든다. 밤나무(栗)는 西+木 즉 서쪽 나무로 서쪽은 죽은 사람의 방위이며 재질이 단단하다. 옛날에는 사당에 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길이·넓이·두께 각 25*6*3 CM로 한쪽은 하늘을 의미해 둥그스름하게 하며 표면은 접착제에 백분을 개어 바른다.
• 신주받침·부(趺) : 신주를 세우는 좌대로 12*9*3의 크기로 중앙에 신주를 꽂아서 세울 깊이 1CM 정도의 홈이 6*3 CM 크기로 파여 있다.
• 신주덮개·도(韜) : 신주를 씌워 덮는 덮개로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 겉에 비단으로 겉면을 바르고 위에는 단추를 달아 벗기기 편하게 한다. 남자는 자주색 여자는 붉은색으로 한다.
• 신주깔개·자(藉) : 신주 받침에 쓰는 방석으로 받침보다 조금 크게 하고 색깔은 덮개와 같다.
• 위패함 받침·독좌(櫝座) : 받침대에 꽂은 신주를 모시는 상자로 고와 비를 함께 모실만한 충분한 넓이의 판자위에 신주 높이보다 약간 높게 양측 면과 뒷면을 병풍 두르듯이 막고 안은 붉은 칠 밖은 검은빛의 옻칠(흑칠)을 한다.
• 위패함 덮개·독개(櫝蓋) : 독좌를 위에서 아래로 씌우는 덮개로 판자로 아래만 틔우고 전후좌우와 위를 막아 만드는데 안쪽은 칠하지 않고 바깥쪽만 흑칠을 한다.
• 위패함 방석·독좌석(櫝座席) : 위패함에 쓰이는 방석으로 검은 색으로 한다.

⑥ 체천(遞遷)
기제는 원래 장자손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나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던 장자손 (5세손)이 세상을 뜨게 되면 고조할아버지(4대조)의 제사는 생존해 있는 다른 현손 (5세손)에게로 옮겨서 지내게 된다. 따라서 현손이 모두 다 죽게되면 친진(親盡)이라고 해서 기제를 끝내고 세일사를 지내게 된다.
다만 나라에 공이 있어 계속해 기일제사를 지내도록 은전을 받은 조상은 이를 부조(不祧)지위라고 하는데 친진 후에도 기제를 지내게 된다.

기제
정조
한식·추석
돌아가신 날 밤 장자손의 집
낮에 사당에서
낮에 산소에서
메와갱·(:생선젓·조기젓)
 
3·좨주·잔반을 내려 술을 따라 올린다. 첨작이 있다
단헌·주전자를 들고 제상위의 잔반에 직접 따른다. 첨작이 없다
 
술을 올릴 때마다 적을 올린다.
진찬 때 3적을 함께 올린다.
 
합문·계문이 있다
없다
 
숙수(숭늉)을 올린다.
안 올린다.
 
축문이 있다
안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강신분향:꿇어앉아 분향하고 재배
강신분향
강신분향
강신뇌주:좌집사가 강신잔반을 주고우집사가 술을 따르면 모사에 3번에 나누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모두 지우고 재배
강신뇌주 중앙에서 한번만
 
 
 
묘지에서는 향안 앞 땅바닥에 함
 
 
 
참신:모두 재배
기제와 같다
기제와 같다
진찬
육적·계적·어적 적소금을 한꺼번에 차리고 메 대신 떡국
 
기제와 같으나 메와 갱의 자리는 비우고 화전이나 쑥떡을 쓰고 3적을 한꺼번에 올림
초헌:전주(고비위에 잔을 올린다)
좨주(모사에 조금씩3번지우고다 시 올린다)
전적(육적과 적소금을 올림)
계반개(집사가모든 덮개를연다)
독축(끝나면 제주 재배)
퇴주·철적
헌주:제주가 향안 앞에 나아가 주전자를 들고 고비를 가리지 말고
윗대부터 술을 가득 따르고 재배
 
 
 
 
설날차례와 같다
 
 
 
 
 
 
아헌:전주·좨주·전적(어적재 배·퇴주·철적
 
 
종헌:전주·좨주·전적(계적재배
 
 
유식:첨작(주인이 주전자로 채움)
삽시정저(주부가 함)
주인과 주부는 재배
삽시정저:주부가 윗대로부터 계반개 고위부터 숟가락 꽂고 젓가락 걸친 후 비위도 한 후 재배
정저:주부가 고비의 순으로 시접에 걸치고 재배
 
합문
시립
설날차례와 같다
계문
 
 
진숙수:주인은 갱을 퇴하고 주부는
숙수를 올린다
 
 
낙저(주부가 함)
주부가 삽시정저순으로하고 합반개
주부가 젓가락을 내려 시접에 둠
합반개(집사가 함)
 
 
사신:모두재배
사신
사신
납주
납주
 
분축
분축
분축
철찬
철찬
철찬
음복
음복
음복
철기구
철기구
철기구

※ 천문박명 : 먼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지는 시기로 지상은 아직 어두운 때이다. 태양은 지평선 아래 18도에 있으며 일출 일몰 약 1시간 12분 전 후를 말한다. 6등성이 사라지고 나타난다.

항해박명 : 바다에서 서로 배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를 갖는 시각으로 태양은 지평선 아래 15도에 있으며 일출 일몰 1시간 전후를 말한다.

시민박명 : 해가 아직 떠오르지는 않았거나 해가 졌으나 인간이 활동하는데 큰 지장이 없고 사람의 모습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를 갖는 때로 태양은 지평선 아래 6도에 있으며 일출 일몰 24분 전후를 말한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 6 내지 12도에 있으면 지평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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